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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더 기버 (줄거리, 감상 포인트, 감상평)

by lhs2771 2026. 1. 8.

더 기버 영화 포스터

 

더 기버: 기억전달자, 고통을 제거한 사회가 인간에게서 빼앗아간 마지막 권리

줄거리 - 완벽한 질서가 감정을 제거하는 방식

더 기버의 세계는 폭력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사회는 ‘폭력의 종식’을 최고의 성과로 내세운다. 사람들은 다투지 않고, 불필요한 갈등을 겪지 않으며, 모두가 정해진 규칙 속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간다. 언뜻 보기에 이 사회는 유토피아에 가깝다. 그러나 영화는 이 안정이 어떤 대가 위에 세워졌는지를 아주 천천히 드러낸다.

이 공동체의 핵심 원칙은 ‘동일성의 선택’이다.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모든 요소, 즉 차이와 기억, 감정은 사회적 위험 요소로 간주된다. 색채는 사라지고, 음악은 존재하지 않으며, 사랑은 언어적으로도 금지된다. 감정은 약물로 억제되고, 언어는 엄격히 관리된다. 사람들은 불행하지 않지만, 동시에 행복하지도 않다.

조너스는 이 사회에서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평범한 청소년이다. 그러나 성인 의식에서 그는 ‘기억전달자’라는 직무를 부여받는다. 이 역할은 공동체 전체가 제거한 과거의 기억을 단 한 사람이 보관하는 자리다. 조너스는 노인 기버로부터 기억을 전달받으며, 이 사회가 무엇을 대가로 평화를 유지해 왔는지를 알게 된다.

기버가 전달하는 기억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다. 그것은 인류가 겪어온 모든 감각의 총합이다. 눈 덮인 언덕에서 썰매를 타는 기쁨, 가족과 식탁에 둘러앉는 따뜻함, 음악이 주는 감동, 그리고 전쟁의 참혹함과 상실의 고통. 조너스는 이 기억들을 통해 처음으로 ‘느낀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체험한다.

기억을 받을수록 조너스의 세계는 달라진다. 이전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색이 보이기 시작하고, 언어의 공허함이 느껴진다. 그는 공동체가 사용하는 단어들이 얼마나 많은 의미를 삭제한 채 남아 있는지를 깨닫는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금지된 이유도, ‘죽음’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도 점점 명확해진다.

특히 조너스를 충격에 빠뜨리는 것은 ‘방출’이라는 제도의 진실이다. 이 사회에서 방출은 실패하거나 부적합한 존재를 조용히 제거하는 절차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죽음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죽음이라는 개념이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가장 잔인한 질문을 던진다. 의미를 제거한 폭력은 과연 폭력이 아닌가.

조너스는 이 구조를 유지하는 한, 어떤 선택도 진정한 선택이 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기억이 없는 사회는 판단할 수 없고, 판단할 수 없는 사회는 책임질 수 없다. 그는 기버와 함께 기억을 공동체로 되돌려 보내는 계획을 세운다. 이는 단순한 탈출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혼란에 빠뜨릴 위험한 시도다.

아기 가브리엘을 데리고 공동체를 벗어나는 조너스의 여정은 고통스럽다. 추위, 굶주림, 두려움이 그를 따라다닌다. 그러나 이 여정은 그가 처음으로 ‘자기 선택의 결과’를 온몸으로 감당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 탈출을 완전한 해방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남긴다. 기억을 되찾은 사회는 과연 어떤 세계가 될 것인가.

 

감상포인트 - 기억·감정·통제가 만드는 윤리적 역설

더 기버를 바라보는 첫 번째 감상 포인트는 기억의 기능이다. 이 영화에서 기억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기억이 제거된 사회에서는 실수도, 후회도, 배움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효율적이지만 동시에 정체된 사회다.

기버라는 인물은 이 구조의 모순을 응축한 존재다. 그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고통을 독점하는 인물이며, 동시에 그 고통을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존재다. 그의 고립은 개인의 희생 위에 세워진 사회 안정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보여준다.

두 번째 감상 포인트는 감정의 관리다. 이 사회에서 감정은 불필요한 소음이다. 약물로 조절되고, 언어로 축소된다. 그 결과 사람들은 상처받지 않지만, 깊이 연결되지도 않는다. 가족은 기능적 단위로 존재하며, 사랑은 생물학적 위험 요소로 취급된다.

영화는 감정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감정은 고통을 수반한다. 그러나 그 고통이야말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다는 증거라는 점을 강조한다. 슬픔이 없다면 기쁨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 번째 감상 포인트는 자유의지다. 이 사회에는 선택이 없다. 모든 것은 시스템이 결정한다. 직업, 배우자, 자녀, 삶의 방식까지. 이는 책임을 제거하는 대신, 인간을 미성숙한 상태에 머물게 한다.

조너스의 변화는 선택의 회복이다. 그는 고통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이 영화는 자유가 쾌적함이 아니라, 감당해야 할 무게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상기시킨다.

시각적 연출 역시 중요한 감상 요소다. 무채색에서 점점 색을 회복하는 화면은 감각의 부활을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이는 단순한 미적 장치가 아니라, 인식의 변화 자체를 시각화한 표현이다.

 

감상평 - 고통을 감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이 된다

더 기버를 보고 난 뒤 가장 오래 남는 감정은 불편함이다. 이 영화는 관객을 위로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은근히 바라고 있던 세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갈등이 없고, 상처받지 않으며,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삶.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정말 그런 삶을 원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 삶이 인간성을 제거한 결과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은 것인가.

조너스의 선택은 정의롭지만, 무모하다. 그는 기억을 되돌려 보내면 사회가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영화는 그 이후를 보여주지 않는다. 기억은 혼란을 가져올 것이고, 고통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 열린 결말은 이 작품의 핵심이다. 더 기버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다. 대신 그 경계가 얼마나 쉽게 뒤바뀔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특히 현대 사회와 강하게 맞닿아 있다. 우리는 알고리즘에 선택을 맡기고, 불편한 기억을 필터링하며, 감정을 관리하려 한다. 더 기버는 그 흐름이 끝까지 갔을 때의 세계를 보여준다.

더 기버는 조용히 말한다. 고통은 제거해야 할 오류가 아니라, 인간이 선택할 수 있다는 증거라고. 그리고 그 선택이 사라질 때, 사회는 평화로울 수는 있어도 인간적이지는 않다고.

그래서 이 영화는 청소년 영화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성인이 되어 다시 볼수록 더 날카롭게 다가온다. 편안함과 인간다움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나이가 들수록 더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더 기버는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선택을 요구한다. 고통을 포함한 자유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