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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더 메뉴 (줄거리, 감상 포인트, 감상평)

by lhs2771 2026. 1. 12.

더 메뉴 영화 포스터

 

소비의 언어로 포장된 폭력, 그리고 식탁 위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민낯

줄거리 - 완벽한 코스 요리가 서서히 의식이 되는 과정 

더 메뉴는 한 끼의 식사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 어떻게 ‘손님’에서 ‘재료’로 전락하는지를 차분하면서도 잔인하게 따라간다. 영화의 무대는 육지와 단절된 외딴섬, 세계 최고 수준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하울리다. 이곳은 단순히 음식을 제공하는 공간이 아니라, 셰프 줄리언 슬로윅이 자신의 철학과 세계관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무대다. 예약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고, 이곳에 초대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사회적 지위와 취향, 그리고 ‘선별됨’을 증명한다.

손님들은 배를 타고 섬에 도착하며 이미 자신들이 특별한 존재라는 확신을 공유한다. 미식 평론가, IT 업계의 거물, 금융 자본가, 유명 배우, 셰프의 광적인 추종자들까지. 이들은 모두 돈과 영향력, 취향과 지식을 통해 이 자리에 접근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 누구도 자신이 초대받지 말았어야 할 이유를 생각하지 않는다.

이 완벽하게 구성된 세계에 균열을 내는 인물이 바로 마고다. 그녀는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 음식의 맥락에도, 설명에도, 레스토랑이 요구하는 태도에도 관심이 없다. 그녀는 우연히 이 자리에 들어온 인물이며, 이 식탁의 규칙을 내면화하지 않은 유일한 존재다. 영화는 이 ‘이질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하며, 마고를 이야기의 윤리적 기준점으로 삼는다.

식사가 시작되고, 코스 요리는 하나씩 등장한다. 처음에는 아름답고 정교한 음식들이 제공되지만, 각 요리에 붙는 설명은 점점 불편해진다. 음식은 더 이상 미각의 대상이 아니라, 손님들의 삶을 해부하는 장치가 된다. 셰프 슬로윅은 요리를 통해 손님들의 선택과 태도, 그리고 그들이 이 시스템에 기여한 방식을 하나씩 폭로한다.

손님들은 처음엔 이 모든 것을 퍼포먼스로 받아들인다. 불편함조차 ‘경험’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키려 한다. 이 경험이 특별하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 만찬이 단순한 예술적 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영화는 슬로윅의 과거를 통해 이 만찬의 이유를 드러낸다. 그는 한때 요리를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요리는 점점 예술이 아닌 브랜드가 되었고, 손님들은 맛이 아니라 설명과 희소성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그의 분노는 특정 개인을 향한 복수가 아니라, 소비 구조 전체를 향해 있다.

이 만찬은 복수가 아니라 완성이다. 모든 손님, 모든 직원, 그리고 자신까지 포함한 하나의 완결된 메뉴. 이 식탁에서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단 한 사람, 이 시스템의 언어를 거부한 마고를 제외하고.

 

감상포인트 - 계급·소비·예술이 폭력으로 전환되는 지점 

더 메뉴의 가장 중요한 감상 포인트는 이 영화가 소비를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구조적 폭력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손님들은 직접 누군가를 해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취향, 평가, 요구는 누군가의 노동과 삶을 소모시킨다. 영화는 이 보이지 않는 폭력을 식탁 위로 끌어올린다.

첫 번째 감상 포인트는 계급이다. 하울리는 철저히 계급화된 공간이다. 손님은 질문하지 않고 설명을 듣고, 직원은 복종한다. 이 질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문제는 이 질서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질문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번째 감상 포인트는 예술의 상품화다. 요리는 예술이 되었지만, 동시에 평가 가능한 지표로 환원된다. 별점과 리뷰, 평론과 영향력은 창작의 방향을 결정한다. 슬로윅의 분노는 예술가가 소비자에게 길들여질 때 발생하는 필연적인 소진의 결과다.

세 번째 감상 포인트는 공범성이다. 손님들은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는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이 ‘컨셉’일 것이라 믿고 싶어 한다. 이 태도는 관객 자신을 향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불편함을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소비하는가.

마고는 이 구조를 정면으로 거부한다. 그녀는 요리를 해석하지 않고, 의미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녀의 태도는 이 시스템에서 가장 위협적인 요소다. 왜냐하면 이 시스템은 소비자의 적극적인 참여와 해석을 전제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감상평 - 이 식탁이 불편한 이유는 우리가 이미 그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더 메뉴를 보고 난 뒤 가장 오래 남는 감정은 공포가 아니라 불쾌함이다. 이 영화는 관객을 즐겁게 하지 않는다. 대신 끊임없이 묻는다. 당신은 이 자리에 왜 앉아 있는가.

슬로윅은 분명히 잘못된 인물이다. 그의 선택은 잔혹하고 비윤리적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의 분노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끝까지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관객은 불편해진다. 그의 논리가 완전히 납득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고가 치즈버거를 주문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정서적 정점이다. 이 장면은 반전이 아니라 회귀다. 요리가 예술이 되기 전, 음식이었던 시절로의 회귀. 이 단순한 욕망 앞에서 슬로윅은 잠시 무너진다.

그러나 이 깨달음은 구원이 아니다. 이 영화는 모두를 살리지 않는다. 오직 이 식탁의 규칙을 거부한 사람만이 빠져나간다. 이는 도덕적 심판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더 메뉴는 결국 관객에게 같은 선택을 요구한다. 우리는 계속 소비할 것인가, 아니면 거부할 것인가. 이 질문에 정답은 없다. 그러나 질문을 외면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손님이 된다.

이 영화는 말한다. 모든 경험이 특별할 필요는 없다고. 모든 식탁에 앉지 않아도 된다고. 그리고 때로는 가장 단순한 욕망이 가장 인간적인 선택일 수 있다고.

그래서 더 메뉴는 끝난 뒤에도 남는다. 맛이 아니라, 질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