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스퀘어, 도덕을 전시하는 사회에서 진짜 윤리는 어디에 있는가
줄거리 (윤리를 선언하지만 실천하지 않는 세계)
더 스퀘어는 한 남자의 추락을 통해 현대 사회의 위선을 해부하는 영화다. 주인공 크리스티안은 스웨덴의 저명한 현대미술관 큐레이터다. 그는 교양 있고, 진보적이며, 인권과 윤리를 말할 줄 아는 인물이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담론을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예술을 통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다고 믿는다.
그가 준비 중인 전시는 ‘더 스퀘어’라는 설치 작품이다. 바닥에 정사각형으로 표시된 공간 안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며, 서로에게 책임을 지고 배려해야 한다는 선언이 붙어 있다. 이 작품은 공동체 윤리를 상징하는 공간이자, 미술관의 핵심 프로젝트다. 관객은 이 사각형 안에서 서로를 신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받는다.
그러나 크리스티안의 일상은 이 선언과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어느 날 그는 길거리에서 소매치기를 당하고, 자신의 지갑과 휴대폰을 잃어버린다. 이 사건은 사소해 보이지만,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균열의 시작이다.
그는 휴대폰 위치 추적을 통해 도난당한 물건이 특정 아파트 단지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리고 합법적이거나 윤리적인 방식 대신, 그 건물 전체에 협박성 전단지를 돌리는 선택을 한다. ‘훔친 물건을 돌려주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내용이다. 이 행동은 그가 평소 말해온 배려와 신뢰의 윤리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후 한 소년이 크리스티안을 찾아와 자신이 도둑으로 오해받았다며 사과를 요구한다. 그러나 크리스티안은 이 상황을 불편해하며 회피한다. 그는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또 다른 약자에게 상처를 준 가해자가 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명확해진다. 윤리를 말하는 사람일수록, 윤리를 실천하는 순간에는 가장 서툴 수 있다는 사실을.
한편 미술관에서는 ‘더 스퀘어’ 전시를 홍보하기 위한 마케팅 캠페인이 진행된다. 홍보팀은 충격적인 영상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고자 하고, 이 과정에서 작품의 취지는 왜곡된다. 윤리를 전시하겠다는 프로젝트는 클릭 수와 논란을 위한 도구로 변질된다.
영화의 후반부는 점점 더 불편한 장면들로 채워진다. 공식 만찬 자리에서 벌어지는 퍼포먼스는 인간의 폭력성과 집단 심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장면은 관객에게 웃음을 유발하는 동시에 강한 불쾌감을 남긴다. 우리는 그 불편함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더 스퀘어의 줄거리는 사건의 해결보다, 인물의 태도 변화에 집중한다. 크리스티안은 끝내 완전한 반성을 하지 않는다. 그는 일부를 깨닫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이 이 영화의 가장 냉정한 결론이다.
감상포인트 (리버럴 윤리와 위선의 해부)
더 스퀘어의 가장 중요한 감상 포인트는 이 영화가 ‘선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이 작품에는 명백한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모두가 올바른 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그 말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첫 번째 감상 포인트는 윤리의 전시화다. 영화 속 인물들은 끊임없이 윤리를 말한다. 인권, 배려, 평등, 공동체 같은 단어들이 반복된다. 그러나 그 윤리는 실제 행동을 요구하는 순간 급격히 후퇴한다. 윤리는 신념이 아니라 이미지가 된다.
두 번째 감상 포인트는 예술의 역할이다. 더 스퀘어는 현대미술이 얼마나 쉽게 자기만족적 장치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은 실제 사회 변화보다, 창작자와 관람자의 도덕적 만족을 충족시키는 데 그칠 위험이 있다.
세 번째 감상 포인트는 책임의 회피다. 크리스티안은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미친 영향을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다. 그는 시스템과 상황, 오해를 핑계로 삼는다. 이 모습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태도로 그려진다.
연출 또한 주제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영화는 불편한 침묵과 어색한 대화를 길게 유지한다. 컷을 쉽게 넘기지 않고, 관객이 불편함을 견디도록 만든다. 이는 우리가 현실에서 외면해 온 순간들을 강제로 마주하게 하는 장치다.
특히 만찬 퍼포먼스 장면은 이 영화의 핵심이다. 질서와 문명이라는 외피 아래 숨겨진 폭력성이, 집단 안에서 어떻게 묵인되고 방관되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관객은 웃다가, 곧 웃음을 거두게 된다.
감상평 (선함을 말하는 사회는 왜 이렇게 무력한가)
더 스퀘어를 보고 난 뒤 가장 강하게 남는 감정은 불편함이다. 이 영화는 관객을 위로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신도 크리스티안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듯하다.
이 작품은 ‘나쁜 사람들’이 아닌 ‘좋은 사람들’을 비판한다. 그것이 이 영화가 가장 날카로운 지점이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선한 편에 두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더 스퀘어는 그 믿음을 조용히 부순다.
크리스티안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이고, 도덕적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반복해서 자기 보호로 귀결된다. 이 모습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은 극단적인 악을 행하지 않지만, 불편한 책임 앞에서는 침묵한다.
이 영화는 묻는다. 우리는 정말 윤리를 믿는가, 아니면 윤리를 믿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가. 그 차이는 행동 앞에서 명확해진다.
더 스퀘어는 희망적인 결말을 제공하지 않는다. 크리스티안은 일부를 깨닫지만, 완전히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결말은 비관이 아니라 현실에 가깝다. 변화는 각성보다 훨씬 더 어렵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예술의 역할에 대해서도 냉정하다. 예술은 질문을 던질 수는 있지만, 답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는다. 윤리를 전시하는 것과 윤리를 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더 스퀘어는 웃기고, 불편하고, 잔인할 정도로 정확한 영화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자화상에 가깝다. 말은 넘쳐나고, 행동은 부족한 시대.
이 작품이 남기는 질문은 단순하지만 무겁다. 우리는 과연 그 사각형 안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리고 그 안에서 책임을 질 수 있는가.
더 스퀘어는 말한다. 윤리는 선언이 아니라, 감수해야 할 불편함이라고. 그리고 그 불편함을 견디지 않는 한, 어떤 선언도 공허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