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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더 헌트 (의심, 사냥, 잔존)

by lhs2771 2025. 12. 31.

더 헌트 영화 속 한 장면

 

더 헌트, 진실보다 빨리 움직이는 확신이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가

더 헌트는 억울한 누명을 쓴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단순한 틀로는 결코 설명될 수 없는 작품이다. 이 영화의 핵심은 사건의 진실 여부가 아니라, 진실이 아직 밝혀지기도 전에 공동체가 어떻게 ‘확신’에 도달하는가에 있다. 〈더 헌트〉는 범인을 찾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은 범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추적한다. 아이의 말 한마디, 어른의 불안, 그리고 그 불안을 확대 해석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어떻게 한 인간을 고립시키고 파괴하는지를 차갑게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악의가 아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선의로 포장된 확신이며, “아이를 위해서라면”이라는 문장이 가진 폭력성이다. 〈더 헌트〉는 묻는다. 우리가 정의라고 믿는 것은 과연 얼마나 쉽게 잔혹해질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을 끝까지 철회하지 않는다.

의심

루카스는 영화의 초반부에서 특별할 것 없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유치원 교사로 일하며 아이들과 잘 지내고, 지역 공동체 안에서 신뢰받는 구성원이다. 이 평범함은 중요하다. 〈더 헌트〉가 보여주려는 비극은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의심은 거대한 사건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아주 사소한 말, 어른의 불안한 표정, 그리고 그 불안을 해석하려는 시스템에서 출발한다. 영화는 이 과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아이의 말은 사실 확인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의 대상으로 즉시 이동한다. 이 순간부터 진실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중요한 것은 ‘혹시 모를 위험’이다.

〈더 헌트〉는 의심이 어떻게 사실로 굳어지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새로운 증거가 등장해서가 아니라, 기존의 말들이 재해석되기 때문이다. 기억은 편집되고, 맥락은 삭제되며, 침묵조차 유죄의 정황이 된다.

루카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수상해 보이고, 해명하면 변명처럼 들린다. 이 구조에서 그는 어떤 선택을 해도 빠져나올 수 없다.

이 영화는 여기서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다. 의심이 시작된 순간, 공동체는 더 이상 진실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불안을 해소할 대상을 원한다.

그리고 그 대상은 언제나 가장 방어력이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루카스는 완벽한 표적이 된다.

의심은 질문으로 남지 않는다. 그것은 곧 확신이 되고, 확신은 행동을 정당화한다.

〈더 헌트〉는 이 과정이 얼마나 빠르고, 얼마나 쉽게 진행되는지를 보여주며 관객을 불안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이 구조가 너무도 익숙하기 때문이다.

 

사냥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 공동체의 태도는 급격히 바뀐다. 더 이상 사실 확인이나 절차는 중요하지 않다. 보호라는 명분 아래, 폭력은 합리화된다.

〈더 헌트〉에서 ‘사냥’은 은유가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구조다. 루카스는 점점 공공의 공간에서 배제되고, 시선에서 밀려나며, 존재 자체가 위협으로 인식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충격적인 점은, 폭력이 감정적으로 폭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분노해서 행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옳다고 믿기 때문에 행동한다.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말은 이 영화에서 가장 위험한 문장이다. 이 문장은 반박을 허용하지 않으며, 모든 질문을 무력화한다.

〈더 헌트〉는 이 문장이 어떻게 폭력의 면허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의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논리는, 곧 누구든 희생될 수 있다는 의미다.

루카스는 반격하지 않는다. 그는 도망치지도, 공격하지도 않는다. 그는 그저 버틴다. 그러나 이 버팀은 결코 영웅적이지 않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자세다.

이 영화는 집단이 어떻게 스스로를 정의롭다고 믿으며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누구도 자신을 가해자로 인식하지 않는다.

모두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바로 이 믿음이 공동체를 가장 위험한 상태로 만든다.

〈더 헌트〉는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는 정말로 이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 역시 같은 방식으로 확신에 편승할 것인가.

 

잔존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사건이 ‘해결된 이후’를 다룬다. 그러나 이 해결은 결말이 아니다. 오히려 진짜 이야기는 그 이후에 시작된다.

루카스는 공동체로 돌아온다. 겉으로 보기에 일상은 회복된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다시 그를 대하는 법을 배우려 한다.

그러나 이 회복은 철저히 불완전하다. 진실은 밝혀졌지만, 의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더 헌트〉는 이 지점을 정확히 짚는다. 거짓은 제거될 수 있지만, 불신은 기억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마지막 장면의 총성은 이 영화의 핵심을 압축한다. 위협은 끝나지 않았다. 단지 형태를 바꿨을 뿐이다.

이 영화는 정의의 승리를 선언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의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공동체는 사과하지 않는다. 책임은 흐릿해지고, 누구도 가해자가 되지 않는다.

〈더 헌트〉는 말한다. 집단이 저지른 폭력은 개인의 사과로는 지워지지 않는다고.

그래서 이 영화는 끝까지 불편하다. 그리고 바로 그 불편함이 이 작품의 가장 정직한 태도다.

〈더 헌트〉는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언제든 사냥꾼이 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닌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