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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돈 룩 업 (줄거리, 감상 포인트, 감상평)

by lhs2771 2026. 1. 12.

돈룩업 영화 포스터

 

멸망을 알리는 숫자 앞에서 인류는 왜 끝까지 농담을 선택했는가

줄거리 - 멸망이 확정된 세상에서 아무도 듣지 않는 경고

돈 룩 업은 인류 멸망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다루지만, 그 출발은 매우 소박하다.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연구 중이던 천문학 대학원생 케이트 디비아스키는 우연히 새로운 혜성을 발견한다. 처음에는 학문적 성취에 가까운 순간처럼 보이지만, 곧 계산을 통해 그 혜성이 약 6개월 후 지구와 충돌한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이 충돌은 단순한 재난이 아니라, 문명 자체의 종말을 의미한다.

케이트와 지도 교수 랜들 민디는 이 사실을 공식적으로 보고하고, 정부에 경고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향한다. 그들의 태도는 전형적인 과학자다. 수치와 확률, 검증된 계산을 근거로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이 믿음은 곧 철저히 배반당한다.

백악관에서 이들의 경고는 정치적 계산 속에 묻힌다. 대통령은 중간선거와 지지율을 우선시하며, 멸망은 ‘선거 이후에 생각해도 되는 문제’로 취급된다. 이 순간 영화는 명확한 방향을 제시한다. 이 재난은 자연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사회의 문제라는 선언이다.

과학자들은 미디어로 향한다. 그러나 대중 매체 역시 진지한 경고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아침 토크쇼는 이 이야기를 우울한 소재로 취급하며, 분위기를 망치지 말라는 식으로 접근한다. 혜성 충돌은 정보가 아니라 ‘콘텐츠’가 된다.

랜들 민디는 점점 미디어 친화적인 인물로 소비된다. 그의 외모와 말투는 ‘과학 스타’로 포장되고, 경고의 핵심은 점점 희석된다. 반면 케이트는 분노를 숨기지 못한 채 ‘히스테릭한 인물’로 낙인찍힌다. 이 대비는 사회가 누구의 말을 듣고, 누구의 분노를 배제하는지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상황은 더 악화된다. 자본과 기술 기업이 개입하면서, 혜성은 제거해야 할 위협이 아니라 ‘채굴 가능한 자원’으로 재정의된다. 과학적 확실성은 무시되고, 불확실한 기술적 낙관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인류의 생존보다 이윤과 권력 유지가 우선된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도 시간은 흐른다. 혜성은 점점 가까워지고, 하늘에서는 맨눈으로도 관측 가능해진다. 그러나 사회는 끝까지 분열된다. ‘돈 룩 업’과 ‘룩 업’이라는 슬로건은 현실을 직시하는 대신, 진영 논리로 재난을 소비하는 인간의 태도를 상징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인류는 마지막 선택의 기회를 맞이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결정이 잘못된 방향으로 이루어진 뒤다. 돈 룩 업의 결말은 충격적이지만, 동시에 이상할 정도로 담담하다. 멸망은 갑작스럽지 않고, 오히려 충분히 예고된 결과였기 때문이다.

 

감상포인트 - 과학·정치·미디어·자본의 치명적인 결탁

돈 룩 업의 가장 중요한 감상 포인트는 이 영화가 멸망의 원인을 외계 혜성에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혜성은 단지 촉매일 뿐이다. 진짜 원인은 경고를 무시하는 구조에 있다.

첫 번째 감상 포인트는 과학의 무력화다. 영화 속 과학자들은 진실을 알고 있지만, 권한은 없다. 데이터는 존재하지만, 그 데이터를 행동으로 옮길 시스템이 부재하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과학이 자주 겪는 위치를 정확히 반영한다.

두 번째 감상 포인트는 정치의 계산이다. 정치인은 재난을 해결할 책임자가 아니라, 지지율을 관리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문제의 심각성보다 ‘언제 발표하는 것이 유리한가’가 더 중요해진다. 이 장면들은 과장이 아니라, 현실을 거의 그대로 반영한 풍자다.

세 번째 감상 포인트는 미디어의 역할이다. 돈 룩 업은 미디어를 악의 축으로 단순화하지 않는다. 대신 미디어가 어떻게 구조적으로 진지함을 거부하는지를 보여준다. 시청률, 클릭 수, 공감 가능한 이야기만이 살아남는 환경에서, 종말은 너무 무겁고 불편한 소재다.

네 번째 감상 포인트는 자본의 논리다. 기술 기업은 혜성을 위기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기회’다. 이 논리는 영화 속에서 가장 냉정하고, 가장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실패의 대가는 사회가 치르고, 이익은 소수가 독점한다.

연출적으로도 이 영화는 과잉과 혼란을 의도적으로 사용한다. 빠른 편집, 정보 과부하, 끊임없는 소음은 관객을 피로하게 만든다. 이는 단점이 아니라, 의도다.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정보 환경을 그대로 재현하기 때문이다.

 

감상평 - 우리는 멸망 앞에서도 끝까지 합리화를 선택했다

돈 룩 업을 보고 난 뒤 가장 오래 남는 감정은 웃음 뒤에 밀려오는 허무함이다. 이 영화는 웃기다. 그러나 그 웃음은 곧 자기혐오로 바뀐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너무 많은 현실의 얼굴을 알아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특정 정치 진영이나 인물을 공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 전체의 태도를 비판한다.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농담으로 만들고, 논쟁거리로 만들며, 끝내 행동하지 않는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인류는 끝을 앞두고도 완벽한 화해나 각성을 이루지 못한다. 대신 소소한 식탁에 앉아, 개인적인 순간을 선택한다. 이 선택은 비겁해 보이면서도, 동시에 이해 가능하다.

돈 룩 업은 말한다. 우리는 항상 무지해서 망하는 것이 아니라고. 대부분은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선택을 했다고.

이 영화는 환경 문제, 팬데믹, 기후 위기와 강하게 연결된다. 경고는 넘쳐나지만, 행동은 늦고, 책임은 분산된다. 돈 룩 업의 혜성은 그 모든 위기의 은유다.

그래서 이 영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무서워진다. 이 이야기는 미래가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현재이기 때문이다.

돈 룩 업은 묻는다. 우리는 정말로 보지 못했는가, 아니면 애써 고개를 돌렸는가.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