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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레옹 (고독, 관계, 선택)

by lhs2771 2025. 12. 27.

레옹 영화 속 한 장면

 

레옹, 서로를 살게 했지만 함께 살아갈 수는 없었던 두 사람의 아주 짧은 동행

레옹은 킬러와 소녀의 만남이라는 자극적인 설정으로 자주 소비되지만, 이 영화의 중심에는 폭력도 범죄도 아닌 고독이 놓여 있다. 〈레옹〉은 사회의 가장 바깥으로 밀려난 두 존재가 잠시 서로의 삶에 스며들었을 뿐, 결코 같은 세계에 머무를 수 없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구원을 약속하지 않으며, 사랑을 이상화하지도 않다. 오히려 왜 어떤 관계는 시작되는 순간부터 끝을 내포하고 있는지, 왜 인간은 서로에게 닿고 싶어 하면서도 끝내 같은 자리에 설 수 없는지를 냉정하게 응시한다. 이 영화의 여운은 감동이 아니라,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았던 삶의 형태를 끝까지 바라보게 만든 데서 비롯된다.

고독

레옹은 철저히 고립된 존재다. 그는 도시 한복판에서 살아가지만, 사회와는 어떤 방식으로도 연결되지 않다. 그의 직업은 살인이지만, 영화는 그를 폭력적인 인물로 소비하지 않다. 오히려 그는 지나치게 규칙적이고, 감정의 기복이 없는 인물로 묘사된다.

레옹의 하루는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방식으로 운동한다. 이 반복은 안정이 아니라 방어다. 감정이 개입될 틈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삶의 구조다.

그가 키우는 화분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다. 화분은 언제든 옮길 수 있고, 뿌리를 내리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 그것은 레옹 자신을 투영한 존재다.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며, 어디에서도 오래 머물지 않다.

마틸다는 전혀 다른 방식의 고독을 지닌 인물이다. 그녀는 가족과 함께 살고 있지만,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였다. 그녀의 가정에는 폭력이 있었고, 무관심이 있었으며, 애정은 언제든 조건부로 변할 수 있는 불안정한 형태였다.

가족이 살해당하는 장면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마틸다가 완전히 사회로부터 분리되는 순간이다. 그녀는 더 이상 아이도, 보호 대상도 아니다. 오직 살아남아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이 두 고독은 성격이 다르지만, 방향은 같다. 둘 다 이미 사회에서 밀려난 존재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이들의 만남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필연에 가깝다.

〈레옹〉은 고독을 개인의 성격 문제로 설명하지 않다. 그것은 구조의 결과이며, 환경이 만들어낸 상태다. 레옹과 마틸다는 스스로 고독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지 자체를 갖지 못했던 인물들이다.

 

관계

레옹과 마틸다의 관계는 시작부터 불균형하다. 나이, 경험, 권력, 삶의 위치 모든 것이 다르다. 이 영화가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이 불균형을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마틸다는 레옹에게 감정을 요구한다. 보호해 달라고, 곁에 있어 달라고, 자신을 필요로 해 달라고 말한다. 그녀는 이 감정을 사랑이라는 언어로 표현하지만, 그 안에는 생존과 집착이 뒤섞여 있다.

레옹은 처음에는 이 요구를 거부한다. 그는 감정이 개입되는 순간, 이 관계가 위험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이미 감정을 잃어버린 삶에 익숙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끝내 마틸다를 밀어내지 못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필요는 그를 살아 있게 만든다.

이 관계는 서로를 변화시킨다. 레옹은 글을 배우고, 말을 배우며, 감정을 표현하려 시도한다. 그는 자신이 아직 인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마주한다.

마틸다는 복수를 꿈꾼다. 그녀는 레옹을 통해 폭력을 배운다. 이 배움은 그녀를 강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더 위험한 방향으로 이끈다.

〈레옹〉은 이 지점을 미화하지 않다. 이 관계는 구원이 아니라, 서로의 결핍이 맞물린 임시적인 균형이다. 오래 유지될 수 없는 구조다.

마틸다가 레옹에게 느끼는 감정은 성숙한 사랑이라기보다, 처음으로 만난 안전에 대한 집착에 가깝다. 레옹이 마틸다에게 느끼는 감정 역시 사랑이라기보다, 뒤늦게 발견한 책임이다.

이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는 한, 이 관계는 반드시 파국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영화는 이 사실을 끝까지 숨기지 않는다.

 

선택

레옹의 마지막 선택은 영웅적인 희생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이를 영웅담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는 세상을 구하지 않는다. 그는 단 한 사람을 살리기로 선택할 뿐이다.

이 선택은 그가 처음으로 내린 ‘자기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결정’이다. 그는 자신의 삶이 끝날 것을 알면서도, 이 선택을 받아들인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폭력을 장식하지 않는다. 총성과 긴장감은 빠르게 사라지고, 남는 것은 침묵이다. 레옹의 죽음은 조용하다.

마틸다는 살아남지만, 그것이 곧 구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또 다른 고독 속으로 들어간다. 다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그녀 안에는 레옹이 남아 있다.

마지막 화분 장면은 희망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잔인하다. 화분은 뿌리를 내렸지만, 레옹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레옹〉은 여기서 묻는다. 누군가의 삶을 이어주는 선택이, 반드시 함께 살아가는 결말로 이어져야 하는지를.

이 영화의 진짜 비극은 죽음이 아니다. 그것은 레옹과 마틸다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계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오래 남는다. 그것이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불완전한 선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인간적이었기 때문이다.

〈레옹〉은 마지막까지 단정하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말할 뿐이다. 어떤 만남은 구원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조금 더 견디게 만드는 정도로만 존재할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