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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도피, 상실, 시간)

by lhs2771 2026. 1. 2.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영화 속 한 장면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사랑이 끝난 뒤에도 감정은 어디로도 가지 못한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이별 이후의 사랑을 다룬 영화다. 그러나 이 작품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이 끝난 뒤에도 감정이 얼마나 오래 제자리에 머무르는지를 집요하게 관찰한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에서 인물들은 떠나지만, 감정은 떠나지 않는다. 이동은 계속되지만, 정착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영화는 로드무비의 형식을 빌리지만, 그 여정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감정의 궤적에 가깝다. 웡 카와이는 이 작품에서 사랑의 격렬함보다, 사랑이 남긴 잔여물에 집중한다. 남아 있는 말, 끝내 전하지 못한 감정,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그리움.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묻는다.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감정도 끝나는가. 아니면 우리는 끝난 사랑을 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울 뿐인가. 이 영화는 그 질문을 가장 느리고, 가장 쓸쓸한 리듬으로 풀어낸다.

도피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의 시작은 명확하다. 엘리자베스는 떠난다. 그러나 그녀의 떠남은 새로운 삶을 향한 선택이 아니라,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다는 감정적 한계에서 비롯된 도피다.

이 영화에서 떠남은 적극적인 결단이 아니다. 그것은 버티지 못한 상태에 가깝다. 엘리자베스는 이별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상대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단지 남아 있는 감정을 견딜 수 없어 움직인다.

웡 카와이는 이 도피를 미화하지 않는다. 엘리자베스의 여정은 자유롭지 않다. 그녀는 이동하지만, 감정적으로는 정지되어 있다.

미국의 여러 도시를 지나며 만나는 인물들은 각기 다른 형태의 상실을 안고 있다. 그러나 이 만남들은 치유의 계기가 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거울에 가깝다.

이 영화는 말한다. 떠난다고 해서 감정이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공간을 바꾸는 것은 가능하지만, 마음의 위치를 바꾸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고.

그래서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의 로드무비적 구조는 역설적이다. 이동은 많지만, 변화는 거의 없다.

엘리자베스는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만, 그 만남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그것은 관계가 아니라 정차에 가깝다.

이 영화에서 도피는 해결책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을 잠시 숨겨두는 방식일 뿐이다.

웡 카와이는 이 도피의 무력함을 카메라의 느린 움직임과 잔상 효과로 시각화한다. 인물은 앞으로 걷지만, 화면은 자주 뒤에 머문다.

도망치는 것은 몸이지, 마음이 아니다.

 

상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의 세계에는 온전한 관계가 거의 없다. 인물들은 모두 무언가를 잃은 상태로 등장한다.

술집에서 만나는 커플, 경찰관과 그의 아내, 그리고 도박에 중독된 여성. 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사랑을 상실했지만, 그 상실을 처리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이 영화는 상실을 극복의 대상으로 그리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지속되는 상태’로 묘사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 상실들이 모두 완전히 끝난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랑은 끝났지만, 감정은 끝나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 블루베리 파이는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아무도 먹지 않는 파이. 버려지지 않았지만, 선택받지도 못한 디저트.

이 파이는 끝난 사랑의 은유다.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더 이상 누군가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상태.

엘리자베스는 이 파이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본다. 버리지도 못하고, 다시 집어 들지도 못하는 상태.

웡 카와이는 상실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비슷한 장면, 비슷한 대사, 비슷한 표정.

이 반복은 지루함이 아니라 진실이다. 상실은 반복된다. 매일 같은 방식으로.

그래서 이 영화의 리듬은 느리다. 그것은 의도적인 선택이다. 상실은 빠르게 지나가지 않는다.

 

시간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에서 시간은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 감정과 기억이 뒤섞인다.

엘리자베스는 앞으로 가고 있지만, 그녀의 감정은 여전히 과거에 머문다. 이 시간의 어긋남이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웡 카와이는 시간을 압축하지 않는다. 대신 늘어뜨린다. 장면은 길고, 대사는 적으며, 침묵은 많다.

이 침묵은 공백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이 머무는 공간이다.

이 영화에서 사랑은 사건이 아니라 상태다.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 않으며, 감정은 서서히 희미해진다.

엘리자베스가 다시 돌아오는 선택 역시 극적인 결단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이 더 이상 도망칠 곳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해피엔딩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다시 마주할 가능성’을 남긴다.

이 가능성은 희망이라기보다, 책임에 가깝다. 감정을 끝내지 못한 채 떠났던 사람이 다시 그 감정 앞에 서는 순간.

이 영화는 말한다. 사랑은 끝나도, 감정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고.

그리고 그 시간은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다고.

그래서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느리다. 그러나 그 느림은 회피가 아니라 존중이다.

웡 카와이는 이 작품에서 사랑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사랑 이후의 시간을 그대로 남겨둔다.

그 시간은 쓸쓸하고, 흐릿하며, 여전히 아프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사랑이 남긴 진짜 흔적이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사랑의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 끝난 뒤에도 계속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끝난 뒤에도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감정처럼,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