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하사탕, 한 인간의 삶을 거꾸로 되감아 끝내 도착하는 절규의 시작점
박하사탕은 한 남자의 죽음에서 출발해 그의 삶을 거꾸로 되짚으며, 개인의 붕괴가 어떻게 시대의 폭력과 맞물려 형성되었는지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 영호를 변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가 왜 그렇게 망가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시간의 역순 속에서 하나씩 드러낸다. 〈박하사탕〉은 회복의 서사가 아니다. 사과의 영화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버렸는가”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강제로 떠넘기는 영화다. 개인의 비극은 결코 개인의 책임으로만 끝나지 않으며, 기억되지 않은 역사는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인간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이 작품은 끝까지 숨기지 않는다.
죽음에서 시작되는 삶
〈박하사탕〉은 죽음으로 시작한다. 철로 위에 서 있는 한 남자, 그리고 기차.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외침은 비장하지도, 영웅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너무 늦어버린 사람의 절규처럼 들린다. 이 장면은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를 단번에 규정한다. 이미 끝난 삶,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이 영화는 이 남자의 죽음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남긴 채 시간을 거꾸로 되돌린다. 그리고 관객은 점점 불편해진다. 왜냐하면 시간이 거꾸로 흐를수록, 영호는 점점 더 ‘인간다운 모습’을 되찾기 때문이다.
현재의 영호는 폭력적이고, 냉소적이며, 타인을 짓밟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는 실패한 중년 남성이자, 주변 사람들에게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다. 하지만 영화가 과거로 갈수록, 그는 사랑을 믿었고, 순수했으며,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구조는 잔인하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대체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까지 변해버린 것일까. 그리고 그 질문은 개인의 성격을 넘어서 시대를 향하게 된다.
〈박하사탕〉에서 죽음은 결말이 아니라 결과다. 이 영화는 죽음의 이유를 찾기 위해 삶 전체를 해부한다. 그리고 그 해부 과정은 단순히 한 남자의 인생사가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단면과 정확히 맞물린다.
폭력과 시대
영호의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균열은 국가 폭력과 맞닿아 있다. 그는 원래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군대와 경찰 조직 속에서, 그는 점점 폭력의 도구가 된다.
광주의 기억은 이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재현되지 않지만, 그 영향은 지워지지 않는다. 영호는 총을 쏘았고, 누군가를 죽였으며, 그 순간 그의 세계는 완전히 뒤집힌다. 이 사건은 단순한 트라우마가 아니다. 그것은 영호의 윤리와 감정 체계를 완전히 붕괴시키는 계기다.
이후의 영호는 더 이상 ‘선택하는 인간’이 아니다. 그는 반응하는 인간이 된다. 명령에 따르고, 조직의 논리에 자신을 맞추며, 감정을 제거한 채 살아간다. 이 과정에서 폭력은 일상이 되고, 죄책감은 억눌린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영호를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동시에 그린다는 점이다. 그는 분명 폭력을 행사한 인물이지만, 동시에 시대가 만들어낸 산물이기도 하다. 〈박하사탕〉은 이 복잡한 위치를 단순화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말한다. 국가의 폭력은 총알로 끝나지 않는다고. 그것은 한 인간의 삶 전체를 왜곡시키고, 그 왜곡은 개인의 실패로 위장된 채 사회 속에 남는다고.
영호가 점점 더 타인을 학대하고, 사랑을 파괴하고, 스스로를 증오하게 되는 과정은 단순한 성격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되지 않은 역사와 정리되지 않은 폭력이 인간 내부에서 썩어가는 과정이다.
기억의 마지막 자리
영화의 마지막, 가장 과거의 시간에서 만나는 영호는 놀라울 정도로 순수하다. 그는 사진을 좋아하고, 사랑 앞에서 서툴며, 세상을 아직 믿고 있다. 이 모습은 관객을 거의 잔인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이 사람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순수함은 희망이 아니라 비극으로 다가온다. 이 삶이 어떻게 파괴될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박하사탕이라는 상징은 여기서 완성된다. 그것은 달콤하지만, 곧 사라지는 감각이다. 영호의 순수함, 사랑, 믿음은 모두 박하사탕처럼 잠시 존재했다가 사라진다.
이 영화가 거꾸로 시간을 흐르게 한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는 언제나 결과만 보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실패한 인간, 폭력적인 남자, 무능한 중년. 하지만 〈박하사탕〉은 묻는다. 그 결과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보았는지를.
마지막 장면에서의 영호는 아직 “다시 돌아가고 싶다”라고 외치지 않는다. 그는 아직 되돌아갈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끝난다. 그리고 관객은 안다. 이 삶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박하사탕〉은 위로를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기억을 요구한다. 개인의 비극을 개인에게만 맡겨두지 말라는 요구다.
이 영화가 지금까지도 강력한 이유는, 그것이 과거를 다루고 있음에도 현재형의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연 지금, 어떤 영호들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