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려함은 왜 늘 파괴와 함께 기억되는가
줄거리 - 신화로 탄생한 스타와 그 이후의 공백
벨벳 골드마인은 전통적인 전기 영화의 구조를 의도적으로 거부한다. 이 영화는 한 명의 인물을 따라가며 탄생과 성공, 몰락을 순서대로 나열하지 않는다. 대신 신화가 만들어지고, 소비되고, 해체되는 과정을 파편적으로 재구성한다. 영화의 출발점은 1970년대 글램 록의 전성기와, 그 중심에 서 있던 스타 브라이언 슬레이드의 갑작스러운 실종 사건이다.
이 사건을 추적하는 인물은 기자 아서 스튜어트다. 그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다. 아서는 과거 브라이언 슬레이드의 음악과 이미지에 깊이 매혹되었던 팬이었고, 그의 정체성 또한 그 시절의 음악과 함께 형성되었다. 영화는 현재의 조사와 과거의 기억을 교차시키며, 하나의 스타가 개인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를 보여준다.
브라이언 슬레이드는 기존의 록 스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등장한다. 그는 성별과 정체성을 고정하지 않고, 화려한 의상과 메이크업, 도발적인 퍼포먼스로 무대에 선다. 그의 음악은 단순한 사운드가 아니라 선언에 가깝다. “너는 너 자신이 되어도 된다”는 메시지는 당시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강력한 해방감을 제공한다.
브라이언의 성공은 단숨에 이루어진다. 그는 시대의 욕망을 정확히 읽어내고, 그것을 극단적인 이미지와 음악으로 구현한다. 대중은 그를 통해 금기를 소비하고, 동시에 자신을 투영한다. 이 과정에서 브라이언은 개인이 아니라 상징이 된다.
그러나 이 신화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브라이언은 또 다른 뮤지션 커트 와일드와 만나면서 변화를 맞는다. 커트는 보다 거칠고 파괴적인 에너지를 지닌 인물로, 브라이언에게 예술적 자극과 감정적 혼란을 동시에 제공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예술적 동맹이자 연인이며, 동시에 서로를 소모시키는 관계다.
시간이 흐르며 글램 록은 상업화되고, 초기의 급진성은 점점 희석된다. 브라이언 역시 점점 안전한 이미지로 변모하며, 그를 지탱하던 신화는 균열을 일으킨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무대 위에서 ‘자신의 죽음’을 연출한 뒤 사라진다.
아서의 조사는 이 실종을 계기로 브라이언의 삶을 재조명하지만, 명확한 진실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결론을 유보한다. 중요한 것은 브라이언이 어디로 갔는지가 아니라, 그가 남긴 흔적이기 때문이다.
벨벳 골드마인의 줄거리는 이렇게 신화의 생성과 붕괴, 그리고 그 잔해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이 영화에서 스타는 실재 인물이 아니라, 시대가 만들어낸 환영에 가깝다.
감상포인트 - 정체성·스타 시스템·욕망의 정치학
벨벳 골드마인의 가장 중요한 감상 포인트는 이 영화가 ‘정체성’을 고정된 것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브라이언 슬레이드는 하나의 인물이지만, 동시에 수많은 욕망과 환상이 투사된 집합체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보다,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소비하는지에 의해 규정된다.
첫 번째 감상 포인트는 정체성의 유동성이다. 영화는 성별, 성적 지향, 이미지가 고정될 필요가 없음을 강조한다. 브라이언의 퍼포먼스는 정치적 선언이자 예술적 실험이다. 그는 규범을 해체하지만, 그 해체조차 상품화되는 과정을 피하지 못한다.
두 번째 감상 포인트는 스타 시스템의 잔혹함이다. 이 영화에서 스타는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의 산물이다. 매니저, 미디어, 팬, 자본이 결합해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이미지가 더 이상 팔리지 않을 때, 스타는 버려진다.
세 번째 감상 포인트는 욕망의 전이 과정이다. 팬들은 브라이언을 통해 자신이 되지 못한 모습을 대리 충족한다. 아서 역시 그의 음악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남는 것은 공허와 질문이다. 그 욕망은 과연 누구의 것이었는가.
연출 또한 이 영화의 핵심이다. 벨벳 골드마인은 과잉된 색채와 음악, 파편적인 편집을 통해 1970년대 글램 록의 감각을 재현한다. 이 과잉은 피로를 유발하지만, 동시에 당시 문화의 혼란과 해방감을 정확히 전달한다.
특히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서사의 언어다. 노래 가사와 무대 퍼포먼스는 인물의 감정과 시대의 욕망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 영화의 절반도 이해할 수 없다.
감상평 - 청춘의 신화는 사라지지만, 흔적은 남는다
벨벳 골드마인을 보고 난 뒤 가장 오래 남는 감정은 향수와 상실감이 뒤섞인 묘한 감정이다. 이 영화는 특정 시대를 찬미하지도, 완전히 비판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 시대가 남긴 에너지와 상처를 동시에 응시한다.
이 작품은 묻는다. 우리는 왜 스타를 필요로 하는가. 그리고 왜 그 스타가 몰락할 때까지 지켜보는가. 벨벳 골드마인은 그 질문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로 확장한다.
브라이언 슬레이드는 영웅이 아니다. 그는 용감했지만, 동시에 취약했고, 결국 시스템을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실패는 무의미하지 않다. 그는 누군가에게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아서의 변화는 이 영화의 정서적 결말이다. 그는 더 이상 스타를 추적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누구였는지, 무엇을 사랑했는지를 돌아본다. 이는 팬이 성장하는 과정이며, 동시에 신화를 떠나보내는 과정이다.
벨벳 골드마인은 말한다. 모든 혁명은 결국 상품이 되지만, 그 순간의 진실함까지 지워지지는 않는다고. 예술은 완벽하게 보존되지 않지만, 사람의 삶 속에 흔적으로 남는다고.
이 영화는 혼란스럽고 과잉되어 있으며, 불친절하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이 영화의 진짜 얼굴이다. 벨벳 골드마인은 이해하기보다 느껴야 하는 영화다.
그래서 이 영화는 끝난 뒤에도 남는다. 줄거리가 아니라, 감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