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포 위 디사피어, 인간을 흉내 내는 존재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비포 위 디사피어는 외계 생명체가 지구를 침략하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끝까지 해체하는 영화다. 이 작품에서 침략은 총과 폭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신 언어, 관계, 직업, 사랑 같은 가장 일상적인 요소들이 하나씩 점령된다. 외계인들은 인간을 제거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을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이 이해의 과정이야말로 가장 폭력적인 침투다. 〈비포 위 디사피어〉는 묻는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감정인가, 기억인가, 언어인가. 아니면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인가. 이 영화는 그 질문을 SF의 외피 속에 숨긴 채, 가장 차갑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밀어붙인다. 그리고 그 끝에서, 인간조차 스스로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남긴다.
침투
〈비포 위 디사피어〉에서 외계인의 침략은 물리적 점령이 아니다. 그것은 개념의 침투다. 외계 생명체들은 인간의 몸을 빌려 지구에 도착하지만, 그들의 목적은 파괴가 아니라 학습이다.
이들은 인간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한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직업이란 무엇인가, 소유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질문은 언제나 상대를 곤란하게 만든다.
이 영화의 잔인함은 여기서 발생한다. 인간은 매일 사용하던 개념들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것들은 너무 익숙해서, 정의되지 않은 채로 작동해 왔기 때문이다.
외계인들은 이 개념들을 하나씩 ‘차지’한다. 가족을 이해하기 위해 가족을 흉내 내고, 직업을 이해하기 위해 노동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개념은 점점 비어 간다. 외형은 유지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과 윤리는 제거된다.
〈비포 위 디사피어〉는 이 침투를 매우 건조하게 묘사한다. 감정적인 음악이나 긴박한 연출은 거의 없다. 대신 대화와 침묵이 반복된다.
이 반복은 관객에게 불안을 유발한다. 왜냐하면 외계인들의 질문이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랑을 말하지만, 사랑을 설명하지 못한다. 책임을 말하지만, 책임의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 침략은 이미 성공한 상태다. 인간 사회는 스스로를 설명할 언어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포 위 디사피어〉의 공포는 점진적이다. 외계인은 점점 더 인간다워지고, 인간은 점점 더 자신을 잃는다.
언어
〈비포 위 디사피어〉에서 언어는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세계를 규정하는 장치다. 외계인들은 인간의 언어를 배운 뒤, 그 언어가 지닌 구조적 빈틈을 파고든다.
언어는 개념을 만들고, 개념은 행동을 규정한다. 외계인들은 이 사실을 누구보다 정확히 이해한다.
이 영화에서 외계인들이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지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단어다. 사랑, 가족, 소유, 일. 이 단어들은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기둥이다.
그러나 이 단어들은 놀라울 정도로 모호하다. 상황에 따라 의미가 바뀌고, 말하는 사람에 따라 기준이 달라진다.
외계인들은 이 모호함을 ‘결함’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그들은 개념을 단순화하고, 기능적으로 재구성한다.
사랑은 보호가 아니라 결속으로 바뀌고, 가족은 정서적 공동체가 아니라 유지 장치로 변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언어는 효율성을 얻지만, 윤리를 잃는다.
〈비포 위 디사피어〉는 이 변화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자연스럽게 진행시킨다.
그 자연스러움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큰 공포다. 우리는 이미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말한다. 언어가 바뀌는 순간, 인간도 바뀐다고.
인간성
〈비포 위 디사피어〉의 후반부는 인간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흔든다. 외계인들은 인간의 감정을 점점 더 잘 흉내 낸다.
그들은 사랑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관계를 유지하려 애쓴다. 그러나 그 사랑에는 망설임이 없다.
인간의 사랑이 불완전하고 모순적인 이유는, 그것이 계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외계인의 사랑은 지나치게 명확하다.
이 명확함은 효율적이지만, 위험하다. 그것은 타인의 고통을 변수로만 취급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묻는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합리성의 결여인가, 비효율적인 연민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외계인들은 인간을 이해할수록 인간을 위협하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에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정의되지 않고, 희생은 계산되지 않으며, 윤리는 상황에 따라 흔들린다.
〈비포 위 디사피어〉는 이 불완전함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묻는다. 이 불완전함이 정말로 지켜야 할 가치인가.
영화의 마지막에 남는 것은 승리도 패배도 아니다. 남는 것은 질문이다.
우리는 과연 인간다움을 설명할 수 있는가. 설명할 수 없다면, 그것은 지켜질 수 있는가.
〈비포 위 디사피어〉는 이 질문을 해결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에게 넘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끝난 뒤에도 오래 남는다. 침략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설명 가능한 인간이 되기를 선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