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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아마데우스 (줄거리, 감상 포인트, 감상평)

by lhs2771 2026. 1. 13.

아마데우스 영화 포스터

 

천재를 사랑한 신과, 천재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에 대하여

줄거리 - 질투와 신앙 사이에서 붕괴되는 한 인간의 고백 

아마데우스는 천재 모차르트의 삶을 다루는 영화이지만, 이야기의 출발점은 모차르트가 아니다. 영화는 노년의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자살을 시도한 뒤, 요양원에서 신부에게 자신의 삶을 고백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는 스스로를 “모차르트를 죽인 자”라고 말하지만, 이 고백은 살인의 자백이라기보다 영혼의 고발에 가깝다. 그는 신을 고발하고, 동시에 자신을 고발한다.

젊은 시절의 살리에리는 신앙심 깊고 성실한 인물이었다. 그는 신에게 순결과 절제를 약속하며, 음악적 재능을 달라고 기도한다. 그의 삶은 노력의 모범에 가깝다. 그는 궁정 음악가로 성공하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다. 이 시점까지 살리에리는 스스로를 신의 선택을 받은 존재라 믿는다.

그러나 모차르트의 등장은 이 믿음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살리에리가 처음 마주한 모차르트는 그가 상상하던 ‘고결한 천재’와는 정반대다. 그는 유치하고, 천박해 보이며, 품위와 절제를 모른다. 웃음소리는 과장되고, 행동은 경박하다. 살리에리는 처음엔 그를 얕잡아본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는 순간, 살리에리는 완전히 무너진다. 그의 음악은 설명이 필요 없다. 그것은 완벽하며, 수정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악보는 마치 신이 직접 받아 적게 한 것처럼 정교하다. 이 순간 살리에리는 깨닫는다. 자신이 평생 바쳐온 신이, 왜 하필 이런 인간에게 이런 재능을 주었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 깨달음은 경외가 아니라 증오로 변한다. 살리에리는 신을 사랑했기에 더 깊이 배신감을 느낀다. 그는 신에게 봉사했지만, 신은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그의 삶은 신앙과 질투 사이에서 서서히 붕괴된다.

영화는 살리에리의 시선을 통해 모차르트의 삶을 따라간다. 모차르트는 음악적으로는 신의 언어를 말하는 존재지만, 사회적으로는 미숙하다. 그는 궁정의 정치와 인간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돈을 관리하지 못하며, 끊임없이 궁핍에 시달린다. 살리에리는 이 약점을 이용해 직접적으로 그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제도와 관습을 통해 그의 길을 막는다.

이 영화에서 살리에리는 단 한 번도 칼을 들지 않는다. 대신 그는 침묵하고, 추천하지 않으며, 기회를 흘려보낸다. 이것이 아마데우스가 보여주는 가장 잔인한 폭력이다. 천재는 살해되지 않지만, 소진된다.

모차르트는 점점 더 병들고, 고립된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음악을 만든다. 레퀴엠을 작곡하는 장면에서 살리에리는 가면을 쓴 채 그의 곁에 앉아 악보를 받아 적는다. 이 장면은 예술에 대한 경외와 죄책감, 증오가 한데 뒤섞인 영화의 정점이다.

모차르트가 죽은 뒤에도 살리에리는 살아남는다. 그는 명성과 지위를 유지하지만, 자신의 음악이 결코 모차르트의 경지에 닿지 못할 것임을 안다. 영화는 그가 “나는 평범한 자들의 수호성인이 되겠다”라고 선언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것은 패배 선언이자, 신에 대한 마지막 조롱이다.

 

감상포인트 - 천재·질투·신앙이라는 불가능한 삼각 구도 

아마데우스의 가장 중요한 감상 포인트는 이 영화가 천재를 중심에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차르트는 이야기의 중심에 있지만, 서사의 주체는 살리에리다. 관객은 천재의 눈이 아니라, 천재를 바라보는 평범한 인간의 시선으로 이 이야기를 경험한다.

첫 번째 감상 포인트는 질투의 감정이다. 살리에리의 질투는 단순한 시기가 아니다. 그것은 신앙이 배반당했다고 느끼는 인간의 분노다. 그는 노력과 도덕이 보상받는 세계를 믿었지만, 모차르트의 존재는 그 믿음을 완전히 부정한다.

두 번째 감상 포인트는 재능의 불공정성이다. 이 영화는 노력의 가치를 조롱하지 않지만, 노력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함을 숨기지 않는다. 모차르트는 선택받은 존재이며, 그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세 번째 감상 포인트는 예술과 인간성의 불일치다. 모차르트는 위대한 음악을 만들지만, 훌륭한 인간은 아니다. 살리에리는 도덕적이지만, 위대한 음악을 만들지 못한다. 이 모순은 끝까지 해결되지 않는다.

연출 또한 탁월하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배경이 아니라, 서사의 언어다. 음악이 흐를 때 관객은 살리에리와 같은 위치에 놓인다. 이해할 수 없지만, 부정할 수 없는 위대함 앞에 서게 된다.

 

감상평 - 우리는 모두 살리에리일지도 모른다 

아마데우스를 보고 난 뒤 가장 오래 남는 감정은 슬픔이다. 이 슬픔은 모차르트의 요절 때문만이 아니다. 살리에리의 고통 또한 너무나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묻는다. 만약 당신이 살리에리라면, 과연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천재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그 존재가 우리를 얼마나 초라하게 만드는 지도 잘 알고 있다.

아마데우스는 노력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력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인간을 갈라놓는다.

살리에리는 신을 저주하지만, 끝내 신을 떠나지 못한다. 그의 증오는 신앙의 다른 얼굴이다. 모차르트는 신의 언어를 말했지만, 신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이 영화는 예술에 대한 이야기이자,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다. 천재는 이해받지 못하고, 평범함은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다.

아마데우스는 말한다. 진짜 비극은 천재의 죽음이 아니라, 그 천재를 이해할 수 없었던 세계라고.

그래서 이 영화는 끝난 뒤에도 남는다. 음악이 아니라, 질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