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이리언 3, 살아남는 이야기를 거부하고 죽음을 선택한 시리즈의 가장 음울한 얼굴
줄거리 - 구조된 생존자가 다시 버려지는 세계
에이리언 3는 시리즈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지만, 전작들이 쌓아 올린 모든 기대를 의도적으로 파괴하며 시작한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충격적인 선택을 내린다. 에이리언 2에서 어렵게 살아남았던 뉴트, 힉스는 오프닝에서 모두 사망한다. 관객이 기대했던 ‘가족 같은 생존자 서사’는 단 몇 분 만에 무너진다. 이 파괴적 출발은 단순한 충격 효과가 아니라, 에이리언 3가 어떤 영화인지를 선언하는 행위다.
리플리는 홀로 구조 포드에서 탈출해 피오리나 161이라는 외딴 교도 행성에 추락한다. 이곳은 폭력 범죄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지만, 동시에 그들이 폭력을 버리고 종교적 금욕 공동체를 형성한 공간이다. 여성은 존재하지 않고, 생식도, 욕망도 금지된 폐쇄적 세계다. 이 공간은 이미 삶보다는 죽음에 가까운 상태다.
리플리는 이곳에서 자신이 다시 한번 에이리언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뉴트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에일리언 페이스허거의 흔적이 발견되고, 곧 새로운 형태의 에이리언이 등장한다. 이 에이리언은 이전과 달리 네 발로 움직이며, 더욱 빠르고 야성적이다. 괴물은 다시금 인간들을 하나씩 제거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에이리언 3의 줄거리는 단순한 생존 공포로 흐르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에이리언은 위협이지만, 유일한 위협은 아니다. 리플리는 곧 자신 안에 퀸 에이리언이 숙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더 이상 싸워서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녀 자체가 재앙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한편 웨이랜드 유타니사는 리플리와 에이리언을 회수하기 위해 접근한다. 그들은 여전히 이 생물을 무기화하려 하고, 리플리를 설득하려 한다. 그들의 언어는 과학과 인류의 미래를 말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탐욕과 통제가 있다.
리플리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살아남는 대신 괴물을 세상에 넘길 것인가, 아니면 자신과 함께 모든 것을 끝낼 것인가. 에이리언 3의 줄거리는 이 선택을 향해 수렴된다. 그리고 그 선택은, 이 시리즈에서 가장 잔혹하면서도 가장 명확한 결말로 이어진다.
감상포인트 - 구원 없는 세계관과 종교적 은유
에이리언 3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감상포인트는 이 영화가 의도적으로 ‘희망’을 제거한다는 점이다. 전작들이 싸움과 생존을 통해 일말의 구원을 제시했다면, 이 작품은 그 가능성을 철저히 부정한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더 이상 목표가 아니다.
첫 번째 감상포인트는 공간의 성격이다. 피오리나 161은 교도소이자 수도원이며, 무덤에 가깝다. 이곳의 남자들은 이미 사회적으로, 정신적으로 죽은 존재들이다. 그들은 신을 믿지만, 구원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들의 신앙은 희망이 아니라 체념에 가깝다.
두 번째 감상포인트는 리플리의 변화다. 에이리언 3의 리플리는 전사의 얼굴이 아니다. 그녀는 싸움을 주도하지 않고, 명령하지 않으며, 미래를 말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있고,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 이 태도는 이전 시리즈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세 번째 감상포인트는 에이리언의 위치 변화다. 이 영화에서 에이리언은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운명에 가깝다. 그것은 제거할 수 없는 존재이며, 반복되는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결과다. 에이리언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이 스스로를 희생하는 것뿐이다.
연출 역시 이 세계관을 강화한다. 어둡고 거친 색감, 폐쇄적인 카메라 구도, 불안정한 편집은 영화 전체를 악몽처럼 만든다. 이는 데이비드 핀처 특유의 미장센이 이미 초기부터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점은 종교적 은유다. 리플리의 선택은 순교에 가깝다. 그녀는 인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그 순간조차 통제하려는 자본의 손길을 거부한다. 이 장면은 SF라기보다 종교적 비극에 가깝다.
감상평 - 살아남지 않겠다는 결단의 의미
에이리언 3를 보고 난 뒤 가장 강하게 남는 감정은 허무함이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보상을 주지 않는다. 싸움의 쾌감도, 생존의 기쁨도 없다. 대신 묻는다. 우리는 왜 계속 살아남으려 하는가.
이 작품은 시리즈 팬들에게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전작의 성취를 무너뜨렸다는 비판은 타당하다. 그러나 동시에, 에이리언 3는 가장 정직한 결말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가 계속해서 말해온 것은, 인간의 탐욕이 부른 재앙이었다.
리플리의 마지막 선택은 영웅적이지만, 낭만적이지 않다. 그녀는 승리하지 않는다. 다만 더 이상의 반복을 거부한다. 이 결단은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완성한다.
에이리언 3는 실패한 영화일 수도 있다. 제작 과정의 혼란, 서사의 단절, 관객의 배신감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시도한 방향성은 지금에 와서야 다시 평가받고 있다. 이 작품은 프랜차이즈의 확장을 거부한 드문 사례다.
이 영화는 말한다. 어떤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는 것보다, 끝내는 것이 더 책임 있는 선택일 수 있다고. 그리고 그 끝이 반드시 아름다울 필요는 없다고.
에이리언 3는 시리즈 중 가장 음울하고, 가장 불편하며, 가장 고독한 작품이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용감한 영화이기도 하다. 살아남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다르게 보인다. 희망이 사라진 세계에서, 인간이 마지막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영화로 남는다.
에이리언 3는 묻는다. 우리는 끝까지 살아남는 이야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더 이상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볼 준비가 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