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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이티(E.T.) (고독, 연결, 이별)

by lhs2771 2025. 12. 28.

이티(E.T.) 영화 속 한 장면

 

이티, 사랑했던 존재를 떠나보내는 법을 통해 어른이 되어가는 첫 번째 순간

이티는 외계 생명체와 아이의 우정을 그린 가족 영화로 기억되지만, 이 작품의 중심에는 모험보다 훨씬 깊은 감정의 서사가 자리하고 있다. 〈이티〉는 낯선 존재와의 만남을 통해 세상을 배우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상실을 경험한 아이가 또 하나의 이별을 통과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다. 이 작품은 연결되는 기쁨보다, 그 연결이 끊어질 때 남는 감정에 더 오래 머문다. 그래서 이 영화는 어린 시절에는 따뜻한 판타지로 다가오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별과 책임, 그리고 사랑의 한계를 가르치는 이야기로 다시 읽힌다. 〈이티〉가 오랫동안 기억되는 이유는 외계인이 하늘을 날아서가 아니라, 떠나야만 했던 존재를 끝내 이해하게 되는 아이의 얼굴을 정직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고독

엘리엇은 영화가 시작될 때부터 정서적으로 고립된 아이로 등장한다. 부모의 이혼 이후 가족은 물리적으로는 함께 있지만, 감정적으로는 흩어져 있다. 집 안에는 어른의 부재보다 더 깊은 공백이 존재한다. 설명되지 않은 침묵과 회피된 대화가 일상처럼 흐른다.

엘리엇의 외로움은 극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대신 그의 시선과 행동 속에 스며 있다. 형과 친구들 사이에서 항상 한 발짝 뒤에 있고, 자신의 감정을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며,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대신 관찰하는 쪽을 택한다.

이 고독은 약함이 아니라 감수성의 다른 이름이다. 엘리엇은 이미 세상이 어떻게 관계를 끊는지를 알고 있는 아이다. 그래서 그는 누군가에게 먼저 마음을 열기보다, 조심스럽게 반응한다.

이티와의 첫 만남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감정적으로는 필연에 가깝다. 둘은 모두 혼자 남겨진 존재이며, 모두 세상으로부터 숨고 싶어 한다. 이티가 두려움에 떨며 숲에서 도망치는 모습은 엘리엇의 내면을 그대로 비춘다.

이 영화가 외계인을 위협적인 존재로 그리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티는 침략자가 아니라, 보호받아야 할 존재다. 그는 강하지 않고, 빠르지도 않으며, 오히려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다.

엘리엇이 이티에게 마음을 여는 과정은 우정의 형성이 아니라, 고독의 공명에 가깝다. 말보다 숨결, 접촉, 반응이 먼저다. 이 관계는 설명이 아니라 감각으로 만들어진다.

〈이티〉는 고독을 제거해야 할 결핍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고독을 통해서만 진짜 연결이 시작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외로움을 아는 존재만이, 타인의 외로움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결

엘리엇과 이티의 연결은 이 영화의 핵심적인 설정이자, 가장 섬세한 은유다. 그들은 감정을 공유하고, 고통을 함께 느끼며, 기쁨조차 동시에 경험한다. 이 연결은 초능력이 아니라 관계의 극단적인 형태다.

엘리엇이 처음 경험하는 감정의 변화는 이티의 상태와 직결된다. 이 장치는 아이와 외계인의 특별한 유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관계의 본질을 설명한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의 감정에 영향을 받고, 그들의 고통에 함께 흔들린다.

이 영화는 연결의 아름다움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연결된다는 것은 상대의 약함과 상처를 함께 감당해야 하는 일임을 분명히 한다. 엘리엇은 이티를 통해 처음으로 책임이라는 감정을 배운다.

정부 요원과 과학자들이 등장하는 순간, 영화의 시선은 분명해진다. 어른들은 이티를 ‘존재’가 아니라 ‘대상’으로 본다. 연구하고, 관리하고, 통제해야 할 무엇으로 바라본다.

이 대비는 아이들과 어른들의 세계를 나눈다. 아이들은 관계를 먼저 생각하고, 어른들은 목적을 먼저 생각한다. 이 차이는 이티를 보호하려는 아이들의 행동을 더욱 절박하게 만든다.

엘리엇이 점점 약해지는 장면은 단순한 긴장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연결이 끊어질 때 인간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는 이티를 잃어가며, 다시 한번 고독과 마주한다.

〈이티〉는 연결이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유한함이 관계를 더 깊게 만든다고 말한다.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그 시간은 더 선명해진다.

 

이별

이티의 죽음처럼 보이는 장면은 영화의 감정적 정점이다. 그러나 이 장면이 깊은 슬픔을 주는 이유는 단순한 상실 때문이 아니다. 엘리엇이 또 하나의 이별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이미 부모의 부재라는 이별을 경험했다. 이티와의 이별은 그 상처를 다시 불러오지만, 이번에는 다른 선택을 한다. 그는 도망치지 않고, 감정을 마주한다.

이티가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엘리엇의 첫 번째 성장이자, 가장 조용한 용기다. 그는 사랑이 붙잡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보내는 것일 수 있음을 배운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티가 남기는 말은 재회를 약속하는 대사가 아니다. 그것은 관계가 남긴 흔적에 대한 선언이다. 이티는 떠나지만, 엘리엇 안에 남는다.

이별 이후 엘리엇은 다시 혼자가 된다. 그러나 이전과 같은 고독은 아니다. 그는 관계가 남긴 감각을 지닌 채 혼자가 된다.

〈이티〉는 이별을 비극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그것은 성장의 일부이며,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증거다. 떠나보낸 경험은 인간을 더 넓게 만든다.

이 영화가 어른이 되어 다시 볼 때 더 깊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모두 한 번쯤, 다시 만날 수 없는 존재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기억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티〉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진짜 연결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함께했던 시간이 한 사람을 바꾸었다면, 그 관계는 이미 삶의 일부가 되었다고.

그래서 〈이티〉는 판타지가 아니라 기억에 관한 영화로 남는다. 그리고 그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또렷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