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졸업, 선택하라는 말들 속에서 끝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청춘의 정직한 기록
졸업은 종종 자유를 향한 청춘의 질주, 혹은 기존 질서에 대한 반항의 상징처럼 소비되어 왔다. 그러나 이 영화를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 그것이 얼마나 단순한 오해인지 곧 알게 된다. 〈졸업〉은 반항의 영화가 아니라 정지의 영화이며, 선택의 영화가 아니라 선택 불능 상태에 관한 영화다. 이 작품은 한 청년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발견하는 과정을 그리지 않는다. 대신, 이미 모든 것이 정해진 세계에서 왜 아무것도 원하지 못하게 되었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영화 속 벤자민은 실패한 인물이 아니라, 성공의 언어에 포획된 인물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공허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며, 그 침묵은 나약함이 아니라 시대가 만들어낸 결과에 가깝다.
공허
벤자민 브래독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이는 청년이다. 명문대를 졸업했고, 부모는 부유하며, 주변 사람들은 그의 앞날을 당연하다는 듯 낙관한다. 그는 이미 사회가 요구하는 모든 조건을 충족시킨 인물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 조건들이 그의 내면과 전혀 연결되지 않고 있음을 첫 장면부터 분명히 보여준다.
공항 무빙워크 위에서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벤의 얼굴은 이 영화 전체를 요약하는 이미지다. 그는 분명히 앞으로 이동하고 있지만, 그 이동에는 목적도 방향도 없다. 사회는 그를 전진하고 있다고 평가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이동을 전혀 실감하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하게 반복되는 감정은 우울이나 분노가 아니라 공허다. 벤은 슬퍼하지도, 절망에 빠지지도 않는다. 그는 단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사회가 성공이라고 부르는 언어들은 그의 삶을 채우지 못한 채, 오히려 감각을 마비시킨다.
부모와 지인들이 준비한 졸업 파티는 이 공허를 극대화한다. 축하의 말들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이제 뭘 할 거냐”는 질문은 선택을 묻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미 정해진 경로를 따라오라는 요구다. 이 질문에는 진짜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벤의 침묵은 반항이 아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가질 수 있는 언어 자체를 배우지 못했다.
〈졸업〉은 이 침묵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지 않는다. 대신, 그 침묵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차분하게 보여준다. 사회는 끊임없이 방향을 제시하지만, 그 방향은 하나뿐이다. 이 단선적인 구조 속에서 벤의 공허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결과다.
도피
미세스 로빈슨과의 관계는 이 공허가 만들어낸 가장 직접적인 결과다. 이 관계에는 설렘도, 성장도 없다. 그것은 감정의 교류라기보다 감정이 멈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
이 관계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이 욕망의 과잉이 아니라 욕망의 부재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벤은 적극적으로 원하지도, 명확하게 거부하지도 않는다. 그는 그저 흘러간다.
엘레인의 등장은 새로운 가능성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녀 역시 벤에게는 또 다른 압박이다. 그녀는 순수하고 명확한 감정을 지닌 인물로 등장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벤에게는 부담이 된다. 그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 말은 확신이라기보다 탈출을 위한 언어에 가깝다.
벤의 행동은 점점 충동적으로 변한다. 그는 충분히 생각하기 전에 움직이고, 움직인 뒤에야 자신의 행동을 해석하려 한다. 이 순서는 그의 미성숙함을 드러낸다.
교회를 향해 달려가는 장면은 종종 낭만적인 클라이맥스로 기억되지만, 이 영화의 맥락에서 보면 그것은 사랑의 고백이 아니라 마지막 도피에 가깝다. 그는 엘레인을 선택했다기보다, 기존의 삶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 것이다.
〈졸업〉은 이 도피를 결코 영웅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벤의 행동은 용기보다는 절박함에 가깝고, 자유보다는 불확실성에 가깝다. 이 영화는 청춘의 방황을 미화하지 않고, 그 불안정함을 끝까지 유지한다.
침묵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졸업〉이 단순한 청춘 로맨스로 오해되지 않게 만드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벤과 엘레인은 버스에 올라타 도망치듯 자리를 떠난다. 그러나 영화는 이 순간을 승리처럼 다루지 않는다.
버스 안에서 두 사람의 표정은 점점 변한다. 처음의 웃음은 서서히 사라지고, 설명할 수 없는 침묵이 자리 잡는다. 이 침묵은 실패도 성공도 아니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는 자각에 가깝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어떤 미래도 약속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기존의 질서를 벗어났지만, 새로운 삶의 구조를 아직 만들지 못했다. 자유는 얻었지만, 방향은 없다.
〈졸업〉은 이 침묵을 통해 청춘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정말 선택하고 있는가, 아니면 선택하는 척하고 있는가를.
이 영화가 세대를 넘어 계속해서 회자되는 이유는, 이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시대는 변했지만, 청춘이 마주하는 선택의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졸업〉은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말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확실한 해답을 갖는 일이 아니라, 더 이상 침묵으로만 버틸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하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이 영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무거워진다. 젊을 때는 도망처럼 보이던 선택이, 시간이 지나면 하나의 질문으로 남는다. 우리는 지금, 어떤 방향을 선택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만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