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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컨포미스트 (등장인물, 감상 포인트, 감상평)

by lhs2771 2026. 1. 16.

컨포미스트 영화 속 한 장면

 

정상으로 보이고 싶었던 욕망이 어떻게 폭력이 되는가 

 

컨포미스트는 거대한 음모나 영웅적 저항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나 평범한 욕망, 즉 “남들과 다르지 않게 살고 싶다”는 소망에서 출발한다. 주인공 마르첼로 클레리치는 이탈리아 파시즘 정권 하에서 정보기관에 협조하는 인물이다. 그는 열성적인 이념가도, 광적인 폭력가도 아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에 속하는 것이다.

영화는 마르첼로의 과거를 단서처럼 흘린다. 어린 시절 겪은 성적 트라우마, 모호한 폭력의 기억, 그리고 그 기억이 남긴 수치심은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한다. 그는 이 기억을 부정하고 지우기 위해 더욱 정상적인 삶을 갈망한다. 결혼, 안정된 직업, 국가에 대한 충성. 이 모든 것은 그의 내면을 봉합하기 위한 장치다.

마르첼로는 파시스트 정권의 지시를 받아 과거 자신의 스승이자 반파시스트 지식인인 콰드리를 감시하고 제거하는 임무를 맡는다. 이 임무는 이념적 신념의 결과라기보다, 체제에 충실한 ‘정상 시민’ 임을 증명하기 위한 시험처럼 보인다. 그는 임무를 의심하지 않는다. 의심하는 순간, 그는 다시 ‘비정상’의 영역으로 밀려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임무 수행을 위해 파리로 향하는 과정에서 영화는 마르첼로의 결혼 생활과 사회적 관계를 병치한다. 그의 아내 줄리아는 순진하고 단순하며,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에 가깝다. 마르첼로는 그녀를 사랑하기보다, 그녀가 제공하는 정상성의 외피를 필요로 한다. 결혼식 장면은 축복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불안과 공허로 가득하다.

파리에서 마르첼로는 콰드리와 그의 아내 안나를 만난다. 안나는 자유롭고 관능적이며, 기존의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인물이다. 그녀의 존재는 마르첼로의 억눌린 욕망과 혼란을 자극한다. 안나에게 끌리면서도, 그는 그녀가 대표하는 자유를 두려워한다. 자유는 그에게 위험한 유혹이다.

영화의 핵심 장면인 암살 시퀀스는 눈 덮인 숲에서 벌어진다. 이 장면에서 마르첼로는 직접 총을 쏘지 않는다. 그는 차 안에 머문 채, 창문 너머로 벌어지는 폭력을 바라본다. 이 선택은 중요하다. 그는 가해자이면서도, 관찰자로 남는다. 책임을 분산시키는 이 태도는 영화가 말하는 ‘동조의 본질’이다.

암살 이후에도 마르첼로는 영웅이 되지 않는다. 그는 승리하지도, 처벌받지도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정권이 무너진 뒤, 그는 또 다른 ‘정상’을 찾아 자신의 과거를 부정한다. 영화는 이 반복을 통해 파시즘이 특정 이념이 아니라, 태도와 습관의 문제임을 드러낸다.

등장인물 - 정상성의 욕망이 빚어낸 얼굴들 

마르첼로 클레리치는 이 영화의 중심이자 가장 불편한 인물이다. 그는 악인이지만, 전형적인 악은 아니다. 그의 선택은 증오보다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그는 특별해지고 싶지 않다. 오히려 평범해지고 싶다. 이 평범함에 대한 욕망이 그를 폭력의 공범으로 만든다.

줄리아는 사회가 승인한 여성성의 구현체다. 그녀는 깊은 질문을 하지 않고, 질서 속에서 안정을 찾는다. 마르첼로에게 줄리아는 사랑의 대상이기보다, 정상성의 증거다.

안나는 자유와 혼란의 상징이다. 그녀는 규범을 따르지 않으며,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안나는 마르첼로가 억눌러온 가능성의 그림자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욕망하면서도 제거하려 한다.

콰드리 교수는 이념적 저항의 상징이지만, 영화는 그를 성인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는 위험을 감수하지만, 그 위험을 타인에게 전가하기도 한다. 이 복합성은 영화의 도덕적 깊이를 더한다.

 

감상 포인트 - 동조의 심리·시선의 정치학 

컨포미스트의 가장 중요한 감상 포인트는 이 영화가 파시즘을 ‘광기’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것을 일상의 선택과 욕망에서 비롯된 결과로 그린다. 파시즘은 특별한 사람들이 만드는 체제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유지하는 질서다.

첫 번째 감상 포인트는 동조의 심리다. 마르첼로는 적극적으로 악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질문하지 않는다. 이 침묵과 회피가 체제를 굴러가게 만든다. 영화는 묻는다. 질문하지 않는 태도는 어디까지 무죄인가.

두 번째 감상 포인트는 시각적 연출이다. 비토리오 스토라로의 촬영은 빛과 그림자를 통해 권력관계를 시각화한다. 인물들은 자주 기둥, 창문, 프레임에 의해 분절된다. 이 분절은 그들의 내면 분열과 사회적 억압을 동시에 상징한다.

세 번째 감상 포인트는 공간의 정치학이다. 관공서, 무도회장, 호텔, 숲은 모두 규율과 욕망이 교차하는 장소다. 특히 숲 장면은 문명과 폭력이 만나는 경계로 기능한다.

영화는 음악과 대사를 절제한다. 침묵과 정적인 구도는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 불편함은 영화의 윤리적 장치다. 관객 역시 방관자가 되기 때문이다.

감상평 - 평범해지고 싶다는 말의 위험성 

컨포미스트를 보고 난 뒤 가장 오래 남는 감정은 불안이다. 이 영화는 과거의 파시즘을 재현하지만, 그 질문은 현재형이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다수에 속하고 싶다는 이유로 판단을 유예하는가.

마르첼로는 끝까지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는 상황에 따라 얼굴을 바꾸며 살아남는다. 이 생존은 승리가 아니라, 공허다. 영화는 이 공허를 벌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에게 넘긴다.

이 영화는 말한다. 악은 거창한 증오에서 시작되지 않는다고. 그것은 평범해지고 싶다는 소망, 눈에 띄지 않으려는 태도, 질문을 미루는 습관에서 자란다고.

컨포미스트는 정치 영화이지만, 동시에 심리 영화다. 이 영화가 오래 남는 이유는 이념이 아니라 인간을 다루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마르첼로는 또 다른 ‘정상’을 찾아 과거를 고발한다. 이 장면은 파시즘의 종말이 아니라, 형태의 변화를 암시한다. 체제는 바뀌어도, 태도는 반복될 수 있다.

그래서 컨포미스트는 고전이지만 낡지 않다. 오히려 지금 더 위험하게 읽힌다.

컨포미스트는 끝난 뒤에도 남는다. 질문으로, 그리고 침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