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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킬링 디어 ((줄거리, 감상 포인트, 감상평)

by lhs2771 2026. 1. 7.

킬링 디어 영화 포스터

 

킬링 디어,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저주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들

줄거리 - 이유 없는 저주가 일상에 스며드는 순간 

킬링 디어는 일상의 균열에서 출발하는 영화다. 주인공 스티븐은 성공한 심장외과 의사로, 안정적인 직업과 부유한 생활, 아내와 두 아이로 구성된 완벽해 보이는 가족을 갖고 있다. 영화의 초반부는 그의 삶을 지나치게 평온하고 건조하게 보여준다. 감정의 기복이 거의 없는 대사, 절제된 움직임, 차갑게 정돈된 공간은 이 세계가 이미 비정상적으로 균형 잡혀 있음을 암시한다.

스티븐은 어느 날부터 10대 소년 마틴과 꾸준히 만난다. 그는 마틴에게 선물을 주고, 식사를 함께 하며, 어딘가 죄책감 섞인 태도로 대한다. 이 관계의 이유는 곧 드러난다. 마틴의 아버지는 과거 스티븐의 수술 중 사망했고, 스티븐은 그 죽음에 대해 명확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살아왔다. 마틴은 그 책임을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초월적인 방식으로 돌려주려 한다.

어느 순간부터 스티븐의 아이들에게 이상한 증상이 나타난다. 다리가 마비되고, 음식을 거부하며, 점점 죽음에 가까워진다. 마틴은 이 모든 현상이 저주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저주는 단 하나의 방식으로만 풀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스티븐이 가족 중 한 명을 직접 선택해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킬링 디어의 줄거리는 이 비현실적인 설정을 현실의 질감으로 밀어붙인다. 저주의 원리는 설명되지 않고, 과학적 근거도 제시되지 않는다. 그러나 증상은 실제로 진행되고, 아이들은 점점 쇠약해진다. 영화는 이 상황을 환상이나 망상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저주는 이 세계의 규칙으로 작동한다.

스티븐과 그의 아내는 처음에는 이를 믿지 않으려 한다. 의사라는 직업적 정체성은 이 상황을 이성적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로 이어진다. 그러나 검사와 치료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은 점점 서로를 의심하고, 계산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살기 위해 아버지에게 매달리고, 아내는 남편에게 선택의 기준을 요구한다. 사랑은 점점 설득으로, 윤리는 거래로 변한다. 영화는 이 과정을 잔인할 정도로 담담하게 보여준다.

킬링 디어의 줄거리는 결말로 향해 갈수록 단순해진다. 선택하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선택하면 한 명만 죽는다. 이 극단적인 조건 앞에서 인간은 더 이상 도덕적일 수 없다. 남는 것은 계산과 공포, 그리고 자기 합리화뿐이다.

 

감상 포인트 - 윤리·죄의식·신화가 만나는 구조 

킬링 디어를 감상할 때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이 영화가 윤리를 다루는 방식이다. 이 작품은 옳고 그름을 묻지 않는다. 대신 옳고 그름이 무력해지는 상황을 만든다. 스티븐은 죄를 지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저주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 영화에서 죄의식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다. 스티븐은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죽였다고 말하지 않지만, 그의 삶은 이미 그 죽음 위에 세워져 있다. 마틴은 신이 나 악마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도덕의 화신에 가깝다. 그는 복수를 하지 않는다. 균형을 요구한다.

킬링 디어는 고대 그리스 비극의 구조를 현대적으로 변형한다. 이유 없는 저주, 피의 대가, 선택을 강요받는 가장은 신화적 서사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신이 없다. 대신 시스템과 규칙만이 존재한다.

두 번째 감상 포인트는 연출의 냉정 함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의도적으로 감정을 배제한다. 대사는 로봇처럼 건조하고, 감정 표현은 최소화된다. 이는 관객이 인물에게 감정 이입하는 것을 방해한다. 대신 상황 자체를 직시하게 만든다.

공간 연출 역시 중요하다. 병원 복도, 넓고 텅 빈 집, 대칭적인 구도는 인물들을 감옥처럼 가둔다. 이 공간들은 안전해야 할 장소지만, 오히려 공포를 증폭시킨다.

세 번째 감상 포인트는 선택의 문제다. 이 영화는 묻는다. 선택은 언제 윤리적일 수 있는가. 그리고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일 수 있는가. 스티븐은 끝까지 선택을 미루지만, 그 미룸 자체가 또 다른 선택이 된다.

이 작품은 관객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라면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그리고 그 선택을 어떤 언어로 정당화하겠는가.

 

감상평 - 선택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 공포 

킬링 디어를 보고 난 뒤 가장 오래 남는 감정은 공포보다 불쾌함이다. 이 영화는 무섭기보다는 잔인하다. 그것은 폭력의 수위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쉽게 윤리를 포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관객에게 위로를 주지 않는다. 선택은 문제를 해결하지만, 아무것도 회복시키지 않는다. 남겨진 가족은 살아남았지만,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킬링 디어는 말한다. 죄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것은 언젠가 다른 형태로 돌아온다고. 그리고 그 대가는 언제나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고.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는, 스티븐이 특별히 악한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 합리적이고 책임감 있어 보이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선택은 더 섬뜩하다.

킬링 디어는 인간의 도덕을 시험하는 영화다. 그러나 시험의 조건은 불공정하다. 어떤 선택을 해도 죄는 남는다. 이 영화는 그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 이 작품은 쉽게 추천하기 어려운 영화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에 남는다. 인간이 스스로를 어떻게 합리화하는지를 이보다 정직하게 보여주는 영화는 많지 않다.

킬링 디어는 질문을 남긴 채 끝난다. 우리는 과연 정의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아니면 단지 덜 고통스러운 쪽을 택할 뿐인가.

이 영화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대신 선택 이후의 공허를 보여준다. 그 공허가 바로 이 영화의 가장 큰 공포다.

그래서 킬링 디어는 보고 난 뒤에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저주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가 이미 그 선택을 이해해 버렸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