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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토니 타키타니 (고독, 소유, 부재)

by lhs2771 2026. 1. 2.

토니 타키타니 영화 속 한 장면

 

토니 타키타니, 사랑이 없었던 삶은 어떻게 고독을 소유하게 되는가

토니 타키타니는 이야기보다 침묵이 먼저 다가오는 영화다. 이 작품은 극적인 사건이나 갈등으로 관객을 끌어들이지 않는다. 대신 고독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한 인간의 삶 전체를 잠식해 가는지를 조용히, 그러나 끝까지 따라간다. 〈토니 타키타니〉에서 고독은 일시적인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주어진 환경이며, 선택이 아니라 조건이다. 토니는 외롭기 때문에 고독해진 것이 아니라, 고독한 방식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살아온 인물이다. 이 영화는 묻는다.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인간은 무엇으로 자신을 채우는가. 관계 대신 소유를 택한 삶은 과연 결핍을 메울 수 있는가. 그리고 사랑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기억인가, 아니면 공허인가. 〈토니 타키타니〉는 그 질문을 거의 말하지 않고, 거의 설명하지 않으며, 오직 이미지와 리듬, 그리고 침묵으로 관객에게 건넨다.

고독

〈토니 타키타니〉의 고독은 후천적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시작부터 이미 결정되어 있다. 토니의 이름, 그의 출생 배경, 그리고 그를 둘러싼 환경은 모두 ‘이방인’이라는 정체성을 강화한다.

일본 사회에서 어울리지 않는 서양식 이름을 가진 토니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소속되지 못한 존재로 규정된다. 그는 설명 없이 고립되고, 질문 없이 혼자가 된다.

이 영화는 고독을 감정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토니는 외롭다고 말하지 않으며, 슬퍼 보이지도 않는다. 대신 그는 조용히 적응한다.

이 적응이야말로 영화가 말하는 가장 잔혹한 지점이다. 토니는 고독을 극복하지 않는다. 그는 고독에 맞추어 자신을 최소화한다.

그의 삶에는 소음이 없다. 음악은 배경으로 흐르고, 대사는 필요 최소한으로만 사용된다. 카메라는 인물과 거리를 유지한 채 관찰한다.

〈토니 타키타니〉에서 고독은 결핍이 아니라 구조다. 누군가를 잃었기 때문에 생긴 상태가 아니라, 누군가를 가질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삶의 결과다.

토니는 타인과 충돌하지 않는다. 대신 철저히 혼자 있는 법을 배운다. 이 학습된 고독은 시간이 지날수록 안정된 상태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안정감은 착각이다. 그것은 감정의 부재가 아니라, 감정을 사용할 기회를 상실한 결과다.

이 영화는 고독을 비극적으로 연출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독이 일상이 되었을 때 인간이 얼마나 조용히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토니 타키타니〉의 고독은 울림이 크다. 그것은 극적인 외로움이 아니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채 지속되는 고독이기 때문이다.

 

소유

토니의 삶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결혼 이후다. 그는 처음으로 누군가와 공간을 공유하고, 감정을 나누는 상태를 경험한다.

그러나 이 사랑은 평범하지 않다. 토니의 아내는 감정보다 물건에 더 집착한다. 그녀는 옷을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이 영화는 소비를 단순한 취향으로 그리지 않는다. 옷은 감정을 대신하는 수단이며, 결핍을 가리는 장치다.

아내의 옷장은 점점 늘어나고, 공간은 채워진다. 그러나 그 충만함은 삶을 풍요롭게 만들지 않는다.

토니는 이 소비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는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침묵을 선택한다.

이 침묵은 배려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관계의 붕괴를 가속화한다. 감정은 말해지지 않을수록 사라진다.

아내가 사고로 사라진 이후, 토니는 옷만 남은 집을 마주한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강력한 이미지다.

사람은 없고, 물건만 남아 있는 공간. 사랑은 사라졌지만, 소유는 그대로 남아 있다.

〈토니 타키타니〉는 여기서 질문한다. 소유는 정말로 상실을 대신할 수 있는가.

토니는 옷을 처분하지 못한다. 그것들은 아내의 흔적이자, 자신이 경험했던 유일한 관계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소유는 위안이 아니라 부담이다. 물건은 기억을 대신하지 못하고, 오히려 기억을 고정시킨다.

그래서 토니는 결국 또 다른 선택을 한다. 옷을 입어줄 누군가를 고용하는 것.

이 선택은 사랑의 대체물이 아니라, 사랑이 불가능해진 인간의 마지막 타협이다.

 

부재

〈토니 타키타니〉의 마지막은 충만이 아니라 부재로 귀결된다. 토니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러나 이 고독은 처음의 고독과 다르다. 그는 이제 ‘잃어본’ 고독을 살게 된다.

사랑을 알지 못했던 고독과, 사랑을 경험한 뒤의 고독은 전혀 다른 무게를 가진다.

토니는 더 이상 감정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감정을 정리한다.

이 영화는 치유를 보여주지 않는다. 토니는 극복하지 않고, 성장하지도 않는다.

그는 단지 다시 살아간다. 이전과 비슷한 방식으로, 그러나 더 많은 침묵을 안고.

〈토니 타키타니〉에서 삶은 극적인 변화가 아니라 반복이다. 그리고 그 반복 속에서 인간은 점점 단순해진다.

이 영화는 묻지 않는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대신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런 삶도 존재한다.”

토니의 마지막 모습은 체념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인식이다.

그는 사랑이 자신을 구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토니 타키타니〉는 위로하지 않는다. 대신 정직하다.

사랑이 없다고 해서 삶이 끝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랑이 없었던 삶은 끝까지 고독을 안고 간다.

그래서 이 영화는 잔잔하지만 무겁다. 감정을 자극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토니 타키타니〉는 사랑의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 부재한 상태에서도 계속되는 존재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그 기록은 조용히 묻는다. 우리는 정말로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