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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프란시스 하 (줄거리, 감상 포인트, 감상평)

by lhs2771 2026. 1. 15.

프란시스 하 영화 포스터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그럼에도 계속 움직이는 삶에 대하여

줄거리 - 미완성인 채로 흘러가는 청춘의 현재진행형 

프란시스 하는 뚜렷한 사건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서사가 아니라, 아직 목표를 명확히 규정하지 못한 한 인물이 하루하루를 건너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주인공 프란시스는 뉴욕에서 무용수가 되기를 꿈꾸는 스물일곱 살의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의 현재는 꿈과는 거리가 있다. 그녀는 정규 단원도 아니고, 안정적인 수입도 없다. 그럼에도 프란시스는 자신을 “무용수”라고 소개한다. 이 자기 정의는 확신이 아니라, 바람에 가깝다.

프란시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연인이 아니라 친구 소피다. 두 사람은 함께 살며, 서로의 삶을 공유한다. 소피는 프란시스의 일상과 감정, 미래 계획까지 알고 있는 존재다. 프란시스에게 소피는 친구이자 가족이며, 일종의 삶의 기준점이다. 이 영화는 이 관계를 연애보다 더 깊고 복잡한 유대감으로 그린다.

그러나 소피가 갑작스럽게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겠다고 말하면서, 프란시스의 세계는 균열을 맞는다. 소피에게 이 선택은 자연스러운 성장의 일부지만, 프란시스에게는 예고 없는 이별처럼 느껴진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중요한 사실을 드러낸다. 프란시스는 여전히 ‘함께 있음’을 전제로 삶을 설계해 왔다는 점이다.

소피의 이사 이후 프란시스의 삶은 점점 더 불안정해진다. 그녀는 여러 집을 전전하며, 임시적인 공간에 머문다. 한 집에서는 환영받지 못하고, 다른 집에서는 어색한 존재로 남는다. 이 이동은 단순한 공간 변화가 아니라, 프란시스가 아직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했음을 상징한다.

무용단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프란시스는 연습에는 참여하지만, 주요 역할을 맡지 못한다. 그녀는 재능이 없지는 않지만, 탁월하지도 않다. 이 애매한 위치는 그녀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그녀는 끊임없이 밝은 척하지만, 그 밝음은 자기 방어에 가깝다.

영화 중반부에서 프란시스는 갑작스럽게 파리로 떠난다. 이 선택은 계획된 여행이 아니라, 현실을 잠시 벗어나고 싶은 충동에 가깝다. 그러나 파리는 그녀에게 낭만적 탈출구가 되지 못한다. 언어는 통하지 않고, 혼자 보내는 시간은 길며, 고독은 더 선명해진다. 이 장면은 도망이 해결책이 아님을 조용히 보여준다.

뉴욕으로 돌아온 프란시스는 결국 자신의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녀는 무용수로서의 꿈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 알지 못한다. 소피와의 관계 역시 이전과 같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인식은 패배가 아니라, 성숙의 시작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프란시스는 작은 변화들을 받아들인다. 완벽한 성공은 아니지만, 완전한 좌절도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미완성이지만,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다. 프란시스 하의 줄거리는 이렇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 자체를 하나의 삶으로 인정하는 데서 마무리된다.

 

감상포인트 - 청춘·관계·정체성의 유예 상태 

프란시스 하의 가장 중요한 감상 포인트는 이 영화가 청춘을 ‘빛나는 시기’로 미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청춘을 불안정하고 어정쩡하며, 종종 초라한 상태로 그린다. 그러나 이 초라함은 부정의 대상이 아니라, 성장의 일부다.

첫 번째 감상 포인트는 관계의 변화다. 프란시스와 소피의 관계는 이 영화의 핵심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같은 속도로 성장하지 않는다. 영화는 이 어긋남을 비극으로 만들지 않는다. 관계는 변할 수 있고, 그 변화는 실패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두 번째 감상 포인트는 정체성의 유예다. 프란시스는 스스로를 규정하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녀는 무용수이지만, 동시에 그렇지 않다. 영화는 이 ‘중간 상태’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이 상태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세 번째 감상 포인트는 공간의 상징성이다. 프란시스가 머무는 집들은 모두 임시적이다. 그녀는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다. 이 공간적 불안정성은 그녀의 내면을 그대로 반영한다.

연출적으로도 이 영화는 인물의 상태를 정확히 반영한다. 흑백 화면은 향수를 자극하지만, 동시에 현실을 단순화한다. 장식 없는 화면 속에서 프란시스의 감정은 더 또렷해진다. 카메라는 그녀를 따라가되 판단하지 않는다.

그레타 거윅의 연기는 이 영화의 정서적 중심이다. 그녀는 프란시스를 사랑스럽게 그리지만, 결코 이상화하지 않는다. 그녀의 어색함, 과잉된 말투, 불안한 웃음은 현실적인 청춘의 얼굴이다.

 

감상평 -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반드시 실패는 아니다

프란시스 하를 보고 난 뒤 가장 오래 남는 감정은 공감이다. 이 영화는 위로를 주지 않지만, 이해를 건넨다. “너만 그런 게 아니야”라는 말 대신, “이런 상태도 삶이야”라고 말한다.

프란시스는 특별히 불행하지도, 특별히 성공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그저 많은 청춘이 겪는 시간을 통과 중이다. 이 통과의 시간은 성취보다 오래 걸리고, 결과보다 불확실하다.

이 영화는 묻는다. 우리는 언제부터 삶이 ‘완성’되어야 한다고 믿게 되었는가. 왜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를 실패로 규정하는가.

프란시스 하는 말한다. 삶은 완성본이 아니라, 초안에 가깝다고. 계속 수정되고, 덧붙여지고, 때로는 지워지며 나아간다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프란시스는 자신의 이름이 겨우 들어갈 만큼 작은 우편함 앞에 선다. 이 장면은 상징적이다. 그녀의 자리는 여전히 작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 자리는 이제 그녀의 것이다.

프란시스 하는 큰 목소리로 외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말한다. 지금의 너도 충분히 살아가고 있다고.

그래서 이 영화는 끝난 뒤에도 남는다. 희망이 아니라, 지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