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대 후반, 경기도의 한 시골 마을에서 여성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은 증거도, 과학 수사도 부족한 상황 속에서 범인을 잡기 위해 허둥대며 수사를 이어간다.
지방 형사 박두만(송강호)과 서울에서 내려온 서태윤(김상경)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건에 접근하지만,
끝내 진실은 잡히지 않는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도 남는 것은 오직 기억과 상처뿐이다.
1 현실보다 더 현실
〈살인의 추억〉은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실제로 벌어진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극적 상상보다 시대의 공기와 사회의 무력감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봉준호 감독은 ‘범인’을 쫓기보다, 그 시대를 살아간 평범한 사람들의 두려움과 혼란에 집중한다.
흙길, 비 내리는 들판, 어두운 수사실 — 모든 장면이 다큐멘터리처럼 현실적이다.
그래서 관객은 “이건 영화가 아니라, 정말 있었던 일 같다”고 느낀다.
〈살인의 추억〉은 미제사건 영화지만, 미스터리를 풀기보다 우리 사회가 만든 한계와 구조적 어둠을 보여준다.
그 사실감이야말로 영화의 가장 큰 공포이자 울림이다.
2️ 진실보다 무력감
영화 속 형사들은 처음엔 코믹하고 무능해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얼굴엔 분노와 무력감이 겹쳐진다.
박두만(송강호)은 직감을, 서태윤(김상경)은 논리를 믿지만 결국 진실에 닿지 못한다.
이 영화의 중심은 ‘범인을 잡는 것’이 아니라, 진실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가에 있다.
증거는 엇갈리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남는 건 허무뿐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박두만이 카메라를 향해 던지는 시선은
관객이 아닌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한 질문이다.
“그때도, 지금도, 우리는 정말 변했는가?”
그 눈빛은 진실보다 더 깊은 공허함을 품고 있다.
3️ 사회가 만든 상처
〈살인의 추억〉의 진짜 괴물은 범인이 아니다. 그는 사회적 무관심과 구조적 폭력이 낳은 그림자다.
1980년대의 억압 속에서 경찰은 인권보다 체면을, 진실보다 실적을 중시했다.
그 결과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진실은 왜곡됐다.
봉준호 감독은 “이 사회가 얼마나 쉽게 인간을 잊는가”를 묻는다.
피해자는 숫자로만 남고, 가해자는 얼굴을 감춘다. 하지만 그 상처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살인의 추억〉은 그 잊힌 상처를 되살려, 우리가 외면했던 현실을 다시 마주하게 만든다.
그래서 영화는 단순한 사건극이 아니라, 집단적 기억의 기록으로 남는다.
진실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살인의 추억〉은 미해결 사건을 다루지만, 결국 사회가 기억해야 할 인간의 고통과 책임을 말한다.
시간이 흘러도 진실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고, 그 상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봉준호는 말한다.
“진실을 마주하는 일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성찰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과거가 아닌, 지금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
“우리는 정말 진실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