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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더 포스트 (시간, 결단, 기록)

lhs2771 2025. 12. 26. 08:37

영화 더 포스트 포스터

 

더 포스트, 말하지 않기로 한 모든 순간이 민주주의를 조금씩 허물어왔다

더 포스트는 베트남전의 진실을 담은 ‘펜타곤 페이퍼’를 둘러싸고, 미국 정부와 언론이 충돌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특종의 쾌감이나 언론의 영웅담을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왜 진실은 늘 이미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늦게 도착하는지, 왜 언론의 자유는 선언이 아니라 매번의 위험한 결단 위에서만 유지되는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더 포스트〉는 정부가 숨긴 문서보다, 그 문서를 공개할지 말지를 두고 망설였던 사람들의 시간을 응시한다. 이 작품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완성된 제도가 아니라, 매번 다시 선택하지 않으면 쉽게 후퇴하는 불안정한 상태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던 시간

〈더 포스트〉는 ‘폭로의 순간’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는 오랫동안 알고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던 시간 위에서 이야기를 출발시킨다. 펜타곤 페이퍼는 갑자기 나타난 비밀문서가 아니다. 그것은 수십 년에 걸쳐 작성된 정부 내부 보고서이며, 그 안에는 미국 정부가 베트남전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고, 무엇을 숨겼으며, 어떤 거짓을 반복해 왔는지가 차분하게 기록되어 있다.

중요한 점은, 이 진실이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기자들도, 정치인들도, 일부 시민들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렴풋이 안다’는 상태는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침묵을 유지하기에 가장 편리한 인식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당시 위태로운 위치에 있었다. 기업 공개를 앞두고 있었고, 재정적으로 불안정했으며, 정부와의 관계는 쉽게 끊을 수 없는 연결 고리로 얽혀 있었다. 언론은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동시에 살아남아야 했다.

〈더 포스트〉가 정직한 이유는, 이 침묵을 비겁함으로 단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침묵은 언제나 현실적인 이유를 동반한다. 소송의 위험, 광고주의 압박, 정치적 보복, 그리고 ‘이 신문이 무너지면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두려움.

이 영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묻는다. 언론의 자유는 과연 이미 주어진 권리인가, 아니면 매번 잃을 각오로 선택해야 하는 행위인가를.

진실은 언제나 말해질 준비가 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늘 불완전하고, 위험하며, 말하는 쪽이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상태로 존재한다. 〈더 포스트〉는 이 불편한 전제를 숨기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 시간은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다. 그 시간 동안 거짓은 정책이 되고, 침묵은 합의가 된다. 이 영화는 그 시간을 ‘기다림’이 아니라 ‘방조’에 가까운 상태로 바라본다.

 

결단이 요구되는 자리

이 영화의 중심에는 캐서린 그레이엄이 있다. 그녀는 언론인으로서의 확신보다, 경영자로서의 책임을 먼저 떠안고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 책임은 늘 의심과 함께 주어진다.

캐서린의 망설임은 개인적 나약함이 아니다. 그것은 구조적 부담이다. 그녀의 결정 하나는 신문사의 존폐, 수백 명의 직원의 생계, 그리고 막대한 법적 책임으로 이어진다.

〈더 포스트〉는 이 선택을 영웅적인 결단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캐서린은 확신에 차 있지 않고, 끊임없이 조언을 구하며, 자신의 판단을 의심한다. 그녀는 언제나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이 불완전함 속에서 이 영화는 민주주의의 실체를 보여준다. 민주주의는 확실한 답이 있을 때 작동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그것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에서 유지된다.

편집국 내부에서도 갈등은 계속된다. 공익을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가, 아니면 신문사를 지키기 위해 한 발 물러서야 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이상과 현실의 대립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과 신념이 동시에 걸린 문제다.

〈더 포스트〉는 이 갈등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대신 이 질문을 끝까지 붙잡는다. 왜냐하면 언론의 역할은 언제나 이 질문 앞에 다시 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캐서린의 결단은 정의의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책임의 선택이다. 그는 자신이 가진 권한을 개인의 안전이나 조직의 안락함이 아니라, 공적 가치에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이 영화는 말한다. 언론의 자유는 기자들만의 몫이 아니라고. 그 자유를 지킬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사람 모두의 몫이라고.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의 의미

〈더 포스트〉의 클라이맥스는 법정 장면이나 정치적 승부가 아니다. 그것은 신문이 인쇄되는 순간이다. 활자가 찍히고, 종이가 쌓이고, 기계가 돌아간다.

이 장면은 환호로 채워지지 않는다. 대신 긴장과 침묵이 흐른다. 왜냐하면 이 기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폭로 이후의 세계를 낭만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진실이 공개되었다고 해서 즉시 정의가 실현되지는 않는다. 갈등은 계속되고, 법적 싸움은 이어진다.

그러나 기록은 남는다. 정부가 무엇을 알고 있었고, 무엇을 숨겼는지에 대한 증거는 더 이상 지워질 수 없다. 이것이 〈더 포스트〉가 말하는 언론의 역할이다.

언론은 세상을 구하지 않는다. 대신 기억을 남긴다. 말해지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오늘날 더욱 강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도 여전히 침묵이 선택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선택은 언제나 누군가에게 더 큰 대가로 돌아간다.

〈더 포스트〉는 말한다. 민주주의는 한 번의 승리로 완성되지 않는다고. 그것은 매번 진실을 공개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선택 위에서 겨우 유지된다고.

그래서 이 영화의 마지막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현재를 향한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진실 앞에서 침묵을 선택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조용히 결론을 남긴다. 말하지 않기로 한 순간마다, 민주주의는 아주 조금씩 무너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