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마더 (사랑, 의심, 집착, 진실, 부정)

마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죄를 지우고 세상을 침묵시키는 한 인간의 얼굴
마더는 지적 장애가 있는 아들이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몰리자, 그를 지키기 위해 모든 윤리와 법, 인간적 기준을 하나씩 무너뜨리는 어머니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 모성을 숭고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모성이 어떻게 집착이 되고, 폭력이 되며, 진실마저 제거하는 힘으로 변모하는지를 끝까지 추적한다. 〈마더〉는 범죄의 진실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랑이 절대선이라는 믿음은 과연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믿음이 다른 인간의 삶을 지워버릴 때, 우리는 그것을 여전히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가. 이 영화는 끝내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관객이 외면할 수 없는 얼굴을 남긴다.
사랑
〈마더〉의 시작은 놀라울 만큼 조용하다. 시골 마을, 작은 약국, 그리고 어머니와 아들. 이 영화는 처음부터 극적인 비극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일상의 반복 속에서 이미 균열이 난 관계를 보여준다.
어머니의 삶은 아들로 완전히 조직되어 있다. 약을 챙기고, 밥을 먹이고, 학교와 마을을 오가며 아들을 보호한다. 그녀에게 아들은 사랑의 대상이기 이전에 삶의 목적이다. 이 관계에서 어머니 자신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 사랑이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다는 점이다. 어머니는 아들의 세계를 대신 관리하고, 대신 판단하며, 대신 분노한다. 아들은 보호받지만, 동시에 성장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영화는 이 상태를 ‘문제’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으로 하여금 서서히 불편해지게 만든다. 이 사랑은 따뜻하지만 숨 막히고, 헌신적이지만 위험하다.
〈마더〉는 초반부터 말한다. 이 사랑은 이미 균형을 잃었다고. 그리고 이 불균형이 언젠가 폭력으로 변할 것임을.
의심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아들이 용의자로 체포되는 순간, 영화는 관객을 단번에 어머니의 편으로 끌어들인다. 경찰의 수사는 조잡하고, 사회는 너무 쉽게 아들을 범인으로 단정 짓는다.
이 장면들은 분노를 유도한다. 약자를 보호하지 않는 시스템, 책임을 회피하는 권력, 그리고 가장 쉬운 대상을 범인으로 만드는 사회. 관객은 자연스럽게 어머니와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
어머니는 곧바로 행동한다. 증거를 찾고, 증인을 만나며, 마을 구석구석을 뒤진다. 이 과정은 추리극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감정의 폭주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어머니의 ‘의심’이 오직 외부로만 향한다는 점이다. 경찰, 이웃, 친구, 낯선 인물들. 단 한 번도 아들은 의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 배제는 의식적인 선택이 아니라, 어머니의 세계관 그 자체다. 그녀에게 아들은 결백하다기보다 ‘의심할 수 없는 존재’다. 이 지점에서 진실은 이미 왜곡되기 시작한다.
집착
수사가 깊어질수록, 어머니의 행동은 점점 더 위험해진다. 그녀는 거짓말을 하고, 위협을 가하며, 타인의 삶을 침범한다. 처음에는 정당해 보였던 행동들이 점차 불편함으로 변한다.
어머니는 스스로를 정의의 편에 두지만, 그녀의 정의는 오직 한 사람만을 향한다. 그 밖의 사람들은 언제든 희생될 수 있다.
이 영화가 잔인한 이유는, 관객이 여전히 어머니를 완전히 미워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녀의 행동은 윤리적으로 잘못되었지만, 감정적으로는 이해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마더〉는 관객을 공범으로 만든다. 우리는 어머니의 선택을 보며 불편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녀가 성공하길 바라게 된다.
이 공범의 감정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을 놓아주지 않는다.
진실
마침내 드러나는 진실은 이 영화의 가장 잔혹한 순간이다. 아들은 완전히 무고하지 않다. 그 사실을 어머니는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린다.
이 순간 영화는 더 이상 범죄 스릴러가 아니다. 이것은 윤리적 선택의 이야기로 전환된다. 진실을 세상에 알릴 것인가, 아니면 사랑을 지킬 것인가.
어머니는 단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는다. 그녀는 진실을 제거한다. 그것이 어떤 대가를 요구하든.
이 선택은 영웅적이지도, 비극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담담하다. 마치 이미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선택처럼.
〈마더〉는 이 장면을 통해 말한다. 사랑이 절대적일 때, 윤리는 가장 먼저 희생된다고.
부정
영화의 마지막, 어머니는 관광버스 안에서 춤을 춘다. 이 장면은 봉준호 영화 중 가장 해석이 어려운 장면 중 하나다.
이 춤은 해방이 아니다. 구원도 아니다. 그것은 기억을 지우기 위한 몸의 반응이다.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 위해, 더 이상 떠올리지 않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행위다.
어머니는 살아남았지만, 그 삶은 공허하다. 진실은 묻혔고, 또 다른 피해자가 생겼으며, 세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간다.
〈마더〉는 끝내 정의를 회복하지 않는다. 대신 침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침묵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 위에 세워지는지를.
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관객은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어머니를 이해했고, 동시에 용서할 수 없다. 이 모순된 감정이 바로 이 영화의 목적이다.
〈마더〉는 말한다. 사랑은 언제나 선하지 않다고. 보호는 언제든 폭력이 될 수 있고, 헌신은 언제든 타인의 삶을 지울 수 있다고.
이 영화는 질문으로 끝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어디까지 눈을 감아줄 수 있는지를. 그리고 그 눈감음이 만들어내는 세계를 우리는 정말 견딜 수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