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문라이즈 킹덤 (도망, 사랑, 어른)

문라이즈 킹덤, 어른이 되기 전에 이미 끝나버린 세계를 기억하는 가장 잔인한 동화
문라이즈 킹덤은 아이들이 집을 나와 숲으로 들어가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른들이 이미 실패한 세계의 구조를 해체하는 영화다. 이 작품은 성장담의 외피를 쓰고 있으나, 성장이라는 단어를 거의 믿지 않는다. 샘과 수지는 어른이 되기 위해 도망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어른보다 더 정확하게 세계의 모순을 감지했기 때문에 떠난다. 반면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호하고 통제하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삶을 전혀 책임지지 못한다. 〈문라이즈 킹덤〉은 묻는다. 우리는 언제부터 아이의 결단을 철없다고 부르기 시작했는가. 그리고 어른의 체념을 성숙이라고 착각하게 되었는가. 이 영화는 그 질문을 동화적인 색감과 완벽하게 계산된 프레임 속에 숨긴 채, 가장 차갑고 잔인한 진실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도망
〈문라이즈 킹덤〉의 서사는 ‘도망’이라는 단어로 시작하지만, 이 도망은 반항도 일탈도 아니다. 그것은 명확한 판단이다. 샘과 수지는 떠나야 할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다.
샘은 고아다. 그는 제도 안에 있지만, 보호받지 않는다. 보이스카우트는 규칙과 질서를 강조하지만, 정작 그 규칙은 샘을 지키지 않는다. 그는 늘 문제아로 분류되고, 언제든 대체 가능한 존재로 취급된다.
수지는 가족과 함께 살고 있지만, 그 집은 이미 감정적으로 폐허다. 부모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를 보지 않고, 아이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수지는 물리적으로는 집 안에 있으나, 정서적으로는 이미 고립되어 있다.
이 영화는 가정과 공동체를 ‘돌아가야 할 곳’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그곳은 지속적으로 평가받고, 통제되고, 방치되는 장소다.
그래서 샘과 수지의 도망은 충동이 아니라 필연이다. 그들은 모험을 원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세계에서는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에 떠난다.
〈문라이즈 킹덤〉은 이 도망을 낭만화하지 않는다. 숲은 아름답지만 거칠고, 자유는 달콤하지만 불안정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위험을 아이들이 스스로 감수한다는 점이다.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위험이 늘 관리된다. 대신 선택은 허용되지 않는다.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선택이 허용된다. 대신 결과를 직접 감당해야 한다.
이 영화는 아이들이 훨씬 더 성숙한 존재임을 이 지점에서 드러낸다. 샘과 수지는 자신들의 선택이 어떤 대가를 요구하는지 알고 있다.
도망은 책임 회피가 아니다. 그것은 책임을 질 준비가 된 존재만이 할 수 있는 결정이다.
〈문라이즈 킹덤〉은 말한다. 도망치는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라, 떠나게 만든 세계가 문제라고.
사랑
샘과 수지의 사랑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첫사랑’과 다르다. 이 사랑은 설렘이나 호기심보다 결단과 합의에 가깝다.
그들은 서로에게서 구원을 기대하지 않는다. 대신 서로의 결핍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 결핍을 포함한 상태로 함께 있기로 선택한다.
수지는 자신이 괴팍하고 공격적인 아이임을 숨기지 않는다. 샘 역시 자신이 쉽게 분노하고, 쉽게 상처받는 존재임을 인정한다.
이 영화에서 사랑은 상대를 바꾸려는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두려는 태도다.
어른들의 관계와 비교하면 이 차이는 더욱 선명해진다. 영화 속 어른들은 오랫동안 함께 살았지만, 서로를 직면하지 않는다. 감정을 말하지 않고, 결정을 미루며, 책임을 회피한다.
샘과 수지는 짧은 시간 안에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말한다. 함께 살고 싶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고, 그것을 위해 행동한다.
〈문라이즈 킹덤〉은 여기서 매우 잔인한 대비를 만든다. 아이들의 사랑은 지나치게 명확하고, 어른들의 관계는 지나치게 흐릿하다.
이 영화는 묻는다. 성숙이란 무엇인가. 오래 버티는 것인가, 아니면 정확히 선택하는 것인가.
샘과 수지의 사랑은 오래 지속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사랑이 거짓이 아니라는 점이다.
〈문라이즈 킹덤〉에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결심이다. 그리고 그 결심은 나이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어른
〈문라이즈 킹덤〉의 어른들은 모두 어딘가 고장 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들을 악인으로 만들지 않는다. 대신 ‘이미 실패한 사람들’로 묘사한다.
경찰은 외롭고, 부모는 서로에게서 이미 철수했으며, 교사와 지도자들은 규칙 뒤에 숨어 있다. 그들은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잊어버렸다.
이 어른들의 가장 큰 문제는 무능이 아니라 체념이다. 그들은 세계가 바뀌지 않는다고 믿고, 불행을 관리하는 법만 배웠다.
그래서 아이들이 떠났을 때, 그들은 당황한다. 아이들이 왜 도망쳤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문라이즈 킹덤〉에서 아이들의 도망은 어른들에게 질문이 된다. 왜 우리는 머물렀는가.
이 질문 앞에서 어른들은 비로소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었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성장의 방향을 뒤집는다. 아이들은 도망치며 성숙해지고, 어른들은 그 도망을 쫓으며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깨닫는다.
〈문라이즈 킹덤〉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 더 나은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미 잃어버린 감정을 관리하는 기술을 익히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영화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그것은 잠정적인 타협에 가깝다.
샘과 수지는 다시 제도 안으로 돌아오지만, 그들의 결단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른들 역시 완전히 달라지지 않지만, 균열은 남는다.
〈문라이즈 킹덤〉은 그 균열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세계는 그 균열 덕분에 완전히 닫히지 않는다.
이 영화는 조용히 말한다. 아이들의 결단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그 결단은 어른들이 잃어버린 감각의 마지막 흔적일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문라이즈 킹덤〉은 동화가 아니다. 그것은 어른을 위한 가장 잔인한 성장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