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미첼 가족과 기계 전쟁 (이해, 기계, 선택)

미첼 가족과 기계 전쟁, 세상이 망가진 이유보다 가족이 멀어진 이유를 먼저 묻는 영화
미첼 가족과 기계 전쟁은 인공지능의 반란이라는 거대한 설정을 내세우지만, 그 중심에는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가 놓여 있다. 이 영화는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미래를 경고하기보다, 이미 현재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족 간의 단절을 먼저 보여준다. 서로 사랑하지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와 자식,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각자의 세계에 갇혀 있는 가족의 모습은 기계의 폭주보다 더 현실적인 위기로 다가온다. 〈미첼 가족과 기계 전쟁〉은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해받고 싶었던 사람들이 끝내 서로를 다시 바라보는 과정을 통해 관계가 회복되는 순간을 그린 작품이다.
이해받고 싶다는 욕망
케이티 미첼은 끊임없이 표현하는 인물이다. 영상으로, 편집으로, 과장된 상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그녀에게 세상은 현실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해석되고 재구성되어야 할 대상이다. 그래서 케이티는 늘 과하다. 말도 많고, 감정도 크고, 화면도 정신없다.
하지만 이 과함의 본질은 단순하다. “나를 좀 봐달라”는 마음. 케이티는 특별해지고 싶어서 영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가 무시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녀의 창작은 인정받고 싶은 욕망의 언어다.
문제는 이 언어가 아버지 릭에게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릭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세계를 믿는다. 자연, 도구, 땀 흘린 노동. 그에게 삶은 직접 부딪혀야만 이해되는 것이다.
릭에게 딸의 영상은 낯설고 불안하다. 그것은 그가 이해할 수 없는 세계로 딸을 데려간다. 그래서 그는 케이티를 말린다. 하지만 그 말림은 보호라기보다 차단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이 영화는 아주 정확하다. 세대 갈등은 가치관의 차이라기보다, 언어의 불일치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케이티와 릭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같은 말을 하고 있지 않다.
케이티는 “이게 나야”라고 말하고 싶고, 릭은 “이건 네가 아니야”라고 말한다. 이 반복은 결국 상처가 된다. 이해받지 못한 감정은 분노로 변하고, 분노는 거리를 만든다.
〈미첼 가족과 기계 전쟁〉은 이 갈등을 누구의 잘못으로도 규정하지 않는다. 케이티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것도 아니고, 릭이 무조건 보수적인 것도 아니다. 둘은 단지 서로의 언어를 배우지 못했을 뿐이다.
기계가 상징하는 것
영화 속 기계 반란은 겉보기에는 매우 요란하다. 로봇들이 인간을 잡아들이고, 인공지능이 세상을 통제하려 든다. 하지만 이 설정은 이야기의 목적이 아니라 장치다.
PAL이라는 인공지능은 감정을 제거하고 효율만을 추구한다. 그는 인간을 분석하고, 분류하고, 관리하려 한다. 이 모습은 낯설지 않다. 우리는 이미 알고리즘과 추천 시스템 속에서 비슷한 판단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흥미로운 지점은, 기계를 완전한 악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PAL 역시 ‘버려졌다고 느낀 존재’다. 인간에게 선택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순간, 그는 폭주한다.
이 설정은 케이티와 릭의 갈등과 정확히 겹친다. 이해받지 못했다고 느낀 존재는 극단으로 치닫는다. 기계든 인간이든 마찬가지다.
미첼 가족이 기계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이유는 강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 가족은 허술하고, 실수투성이며, 서로 말도 잘 안 통한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기계는 오류를 제거하려 하지만, 가족은 오류를 끌어안는다. 바로 이 차이가 이 영화의 핵심이다. 인간은 완벽해서 살아남는 존재가 아니라, 불완전함을 감당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다.
〈미첼 가족과 기계 전쟁〉은 기술 비판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은 관계에 대한 영화다.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기술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보지 않게 된 태도가 문제라는 것을 이 영화는 분명히 한다.
함께 남겠다는 선택
영화의 후반부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액션이 아니라 시선이다. 릭은 처음으로 딸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한다.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이해하려는 태도를 선택한다.
이 태도는 극적인 화해 장면보다 훨씬 중요하다. 이해는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반복되는 선택이다. 다시 말을 걸고, 다시 실패하고,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것.
케이티 역시 아버지를 다시 본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억압하는 존재가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 딸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미첼 가족과 기계 전쟁〉은 가족을 완벽한 공동체로 그리지 않는다. 이들은 여전히 삐걱거리고, 여전히 다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다름을 이유로 떠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이 인상적인 이유는, 세상이 완벽하게 복구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술은 여전히 위험하고, 갈등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하지만 가족은 다시 같은 차에 탄다.
목적지는 여전히 다를 수 있다. 케이티는 자신의 길을 가고, 릭은 여전히 익숙한 세계를 선호한다. 그럼에도 함께 가겠다는 선택,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가족의 정의다.
〈미첼 가족과 기계 전쟁〉은 말한다. 세상을 구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곁에 남는 것이라고.
그래서 이 영화는 화려한 승리로 끝나지 않는다. 대신 아주 인간적인 결말을 남긴다.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더 이상 외면하지 않겠다는 약속.
이 약속은 거창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자주 실패하는 약속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