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바이스 (줄거리, 감상 포인트, 감상평)

보이지 않는 권력이 어떻게 세계를 움직였는가
줄거리 - 조용한 인물이 권력을 장악하는 방식
바이스는 영웅도 악당도 아닌, 그러나 수많은 비극의 중심에 있었던 한 인물을 따라간다. 영화의 주인공 딕 체니는 처음부터 권력을 갈망하는 인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술에 취해 사고를 치고, 직업도 불안정하며, 정치적 야망이 뚜렷하지 않은 청년으로 시작한다. 이 출발점은 중요하다. 바이스는 거대한 권력이 언제나 거대한 야망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체니는 아내 린 체니의 압박과 조언을 통해 정치의 길로 들어선다. 그는 말이 많지 않고,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인물이다. 대신 그는 시스템을 이해하고, 문서와 규칙, 권한의 빈틈을 파고드는 데 탁월한 감각을 보인다.
닉슨 행정부 시절, 체니는 럼즈펠드 밑에서 정치의 실무를 배운다. 이 시기 그는 권력이 연설이나 이미지가 아니라, 결정 구조와 절차를 장악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체득한다. 그는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결정권을 쥐는 법을 배운다.
시간이 흘러 조지 W. 부시가 대통령 후보로 등장한다. 체니는 부시에게 부통령직을 제안받지만, 단순한 상징적 역할에는 관심이 없다고 선을 긋는다. 그는 부통령의 권한을 전례 없이 확장하는 조건으로 자리를 수락한다. 이 순간부터 바이스는 본격적인 권력 서사가 된다.
9·11 테러는 체니에게 결정적인 기회가 된다. 공포와 혼란 속에서 그는 ‘국가 안보’라는 명분으로 행정부 권한을 급격히 확대한다. 영장 없는 도청, 고문을 포함한 강화된 심문, 선제공격이라는 개념은 이 시기에 제도화된다.
체니는 직접 연설하지 않는다. 대신 법률가들을 움직이고, 문서를 통해 결정을 굳힌다. 그는 책임을 분산시키고, 결정의 주체를 흐린다. 전쟁은 시작되지만, 그 전쟁을 명확히 지시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이라크 전쟁은 이 영화의 핵심 사건이다. 대량살상무기라는 명분은 끝내 입증되지 않지만, 이미 수많은 생명은 희생된 뒤다. 체니는 그 결과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한 일을 ‘필요한 선택’으로 규정한다.
영화는 체니의 개인사도 병행해 보여준다. 그는 가족에게는 충실한 가장이며, 딸의 성정체성을 지지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 양면성은 관객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잔혹한 정치적 결정과 사적인 인간성은 동시에 존재한다.
바이스의 줄거리는 체니의 몰락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그가 여전히 책임지지 않은 채 살아남았음을 강조하며 마무리된다. 이것이 이 영화가 가장 냉정한 지점이다.
감상포인트 - 권력·시스템·책임의 실종
바이스의 가장 중요한 감상 포인트는 이 영화가 권력을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로 다룬다는 점이다. 체니는 독재자가 아니다. 그는 민주주의 시스템 내부에서 움직인다. 바로 그 점이 이 영화의 핵심 공포다.
첫 번째 감상 포인트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다. 체니는 카메라를 피하고, 연설을 하지 않으며, 주목받는 자리를 거부한다. 그는 권력이 가장 안전해지는 위치가 ‘보이지 않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두 번째 감상 포인트는 법과 언어의 왜곡이다. 영화는 법률 용어가 어떻게 폭력을 합법화하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고문’은 ‘강화된 심문’으로 바뀌고, ‘전쟁’은 ‘작전’으로 포장된다. 언어의 변화는 도덕적 책임을 흐린다.
세 번째 감상 포인트는 책임의 분산이다. 바이스 속 결정들은 항상 집단적이고 절차적이다. 누구도 단독으로 책임지지 않는다. 이 구조는 민주주의의 장점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가장 위험한 맹점이 된다.
연출 방식 또한 주목할 만하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풍자를 결합하며, 관객에게 끊임없이 정보를 주입한다. 그러나 이 정보는 설명보다 질문에 가깝다. 우리는 알고 있었는가, 아니면 알고 싶지 않았는가.
특히 중간중간 삽입되는 파격적인 편집과 메타적 장치는 이 영화가 단순한 전기 영화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 바이스는 관객을 편안히 두지 않는다.
감상평 - 괴물이 아닌 평범함이 만든 비극
바이스를 보고 난 뒤 가장 오래 남는 감정은 분노보다 무력감이다. 이 영화에는 명확한 악당이 없다. 체니는 비명을 지르지 않고, 광기에 사로잡히지도 않는다. 그는 차분하고 계산적이며,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한다.
이 작품은 묻는다. 이런 인물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답은 단순하다. 시스템이 허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스템을 유지해 왔다.
바이스는 정치 영화이지만, 동시에 인간에 대한 영화다. 체니는 가족을 사랑하고, 자신의 신념에 충실하다. 그러나 바로 그 확신이 수많은 타인의 삶을 파괴한다.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는, 체니가 특별히 비정상적인 인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유형이다. 말수가 적고, 효율을 중시하며, 결과를 위해 과정을 정당화하는 사람.
바이스는 결말에서 관객에게 구원을 제공하지 않는다. 체니는 처벌받지 않고, 시스템은 유지된다. 이 열린 결말은 냉혹하지만 정직하다. 현실은 영화처럼 정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말한다. 민주주의는 자동으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감시와 질문, 책임 요구가 멈추는 순간, 가장 조용한 사람이 가장 큰 권력을 쥘 수 있다고.
그래서 바이스는 불편한 영화다.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반복될 수 있는 구조에 대한 경고이기 때문이다.
바이스는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정말로 몰랐는가, 아니면 애써 보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