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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버드맨 (줄거리, 감상 포인트, 감상평)

lhs2771 2026. 1. 10. 23:57

버드맨 영화 포스터

 

버드맨,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자아를 잠식할 때

줄거리 (영웅의 그림자에 갇힌 한 배우의 마지막 도전)

버드맨은 화려한 히어로 영화의 성공 뒤에 남겨진 인간의 초상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품이다. 주인공 리건 톰슨은 한때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린 슈퍼히어로 영화 ‘버드맨’ 시리즈의 주연 배우였다. 그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얼굴이었고, 대중의 사랑과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거머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 성공은 오래가지 않는다. 프랜차이즈가 끝나고 시간이 흐르자, 리건은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하는 배우가 된다.

그는 자신이 ‘배우’로서 진짜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느낀다. 사람들은 그를 연기자가 아닌 히어로 캐릭터로만 기억한다. 이 상실감과 분노는 리건을 새로운 도전으로 이끈다. 그는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을 연출하고 직접 주연까지 맡으며, 자신의 예술성을 증명하려 한다. 선택한 작품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을 각색한 연극이다. 이는 상업적 성공보다는 예술적 평가를 겨냥한 결정이다.

그러나 연극 준비 과정은 순탄하지 않다. 제작 환경은 열악하고, 동료 배우들과의 관계는 긴장으로 가득하다. 특히 메서드 연기로 유명한 배우 마이크 샤이너는 리건의 통제 밖에서 움직이며, 무대 위와 아래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킨다. 마이크는 연기 자체에 몰입하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리건의 자존심을 정면으로 자극하는 존재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리건의 머릿속에는 ‘버드맨’이라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울린다. 그것은 과거의 성공이자, 그를 묶어두는 족쇄다. 버드맨은 리건에게 말한다. 대중은 예술보다 히어로를 원하고, 인정받고 싶다면 다시 하늘을 날아야 한다고. 이 목소리는 환청인지, 내면의 분열인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리건의 개인사 또한 무너져 있다. 딸 샘과의 관계는 단절에 가깝고, 전 아내와의 관계 역시 미묘하다. 그는 무대 위에서 자아를 증명하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점점 더 고립된다. 연극의 초연이 다가올수록 그의 정신 상태는 불안정해지고, 자아와 욕망,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흐려진다.

영화는 공연 당일을 향해 달려가며, 리건이 무엇을 선택하게 될지를 묻는다. 그는 예술을 통해 자신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다시 대중의 시선을 향해 날아오를 것인가. 그 선택의 순간은 버드맨이라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으로 남는다.

 

감상포인트 (자아·예술·인정 욕망이 충돌하는 무대)

버드맨의 첫 번째 감상 포인트는 ‘인정 욕망’의 해부다. 이 영화는 성공 그 자체보다, 성공 이후에 남겨진 공허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리건은 돈도, 명성도 경험했지만, 그것이 자신을 진짜 배우로 만들어주지 않았다고 느낀다. 그의 분노는 실패가 아니라,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는 감각에서 비롯된다.

두 번째 감상 포인트는 형식적 실험이다. 영화는 전편이 하나의 롱테이크처럼 보이도록 촬영된다. 이 연출은 관객을 리건의 의식 속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낸다. 장면의 단절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의 불안과 초조, 혼란이 그대로 전달된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과시가 아니라, 주제와 완벽히 맞물린 장치다.

세 번째 감상 포인트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다. 리건이 공중을 날거나 물체를 움직이는 장면들은 실제 초능력인지, 망상인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영화는 그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린다. 이는 리건이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관객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예술가의 상상력은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부터가 환상인가.

또 하나 주목할 지점은 배우 마이크 샤이너의 존재다. 그는 리건이 갈망하는 ‘진짜 예술가’의 전형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인물이다. 이 대비는 예술성과 인간성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든다. 예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태도가 과연 존중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음악 역시 중요한 감상 요소다. 재즈 드럼이 주를 이루는 사운드는 리건의 불안한 심리를 반영하며, 장면 전환 없이 흐르는 리듬은 그의 심박수처럼 느껴진다. 이 음악은 관객을 편안하게 두지 않는다.

 

감상평 (날아오르는 순간은 해방인가 도피인가)

버드맨을 보고 난 뒤 가장 강하게 남는 인상은 이 영화가 매우 솔직하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예술을 숭고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예술을 욕망과 불안,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뒤엉킨 공간으로 그린다. 리건은 순수한 예술가가 아니라, 상처 입은 인간이다.

이 영화는 묻는다. 우리는 왜 인정받고 싶어 하는가. 그리고 그 인정은 누구에게 받아야 의미가 있는가. 대중의 박수인가, 비평가의 찬사인가, 아니면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인가.

버드맨의 결말은 명확하지 않다. 리건이 날아오르는 장면은 해방일 수도, 완전한 도피일 수도 있다. 영화는 그 해석을 관객에게 맡긴다. 이 열린 결말은 영화의 핵심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자아의 완성은 타인이 대신 정의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버드맨은 현대 예술가의 초상을 그린 영화이기도 하다. SNS와 미디어 속에서 끊임없이 평가받는 시대, 존재는 ‘보이는 것’으로 환원된다. 이 속에서 리건의 불안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감정으로 다가온다.

이 작품은 히어로 영화의 외피를 빌려, 오히려 히어로 서사를 해체한다. 하늘을 나는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땅에 발을 딛고 자신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라는 점을 조용히 강조한다.

버드맨은 화려하고 시끄럽지만, 그 중심에는 외로운 인간 하나가 서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끝난 뒤에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것은 리건의 이야기가 곧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말한다. 날고 싶다는 욕망은 인간적이지만, 진짜 용기는 떨어질 위험을 감수하고 서 있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