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설리 (선택, 합리성, 책임)

설리, 모두가 살아남았다는 결과만으로는 끝내 감당할 수 없었던 한 인간의 판단과 책임
설리는 2009년 허드슨강에 비상 착수해 155명의 승객과 승무원 전원을 구조한 체슬리 설렌버거 기장의 실화를 다룬 영화다. 그러나 이 작품은 ‘기적의 파일럿’이라는 영웅 서사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모두가 살아남았음에도 왜 단 한 사람만이 끝없이 자신의 판단을 설명해야 했는지, 왜 완벽해 보이는 결과조차 시스템 앞에서는 끊임없이 의심과 검증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설리〉는 용감한 결단을 찬양하는 영화가 아니라, 책임이란 무엇인지, 인간의 경험과 직감이 규정과 데이터 앞에서 어떤 위치에 놓이는지를 차분하지만 끝까지 밀어붙이는 작품이다. 이 영화가 남기는 것은 감동이 아니라, ‘옳았던 판단조차 왜 고통이 되는가’라는 불편한 질문이다.
몇 초 안에 내려진 선택이 만들어낸 무게
〈설리〉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비행 전체가 아니다. 단 몇 초, 정확히 말하면 인간이 상황을 인식하고 결단을 내리기까지의 짧은 공백이다. 새 떼와 충돌한 후 엔진이 멈추고, 조종석에는 경고음이 울리며, 고도는 빠르게 떨어진다. 이 모든 상황이 동시에 벌어진다.
영화는 이 순간을 스펙터클 하게 소비하지 않는다. 대신 설리의 얼굴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계산기처럼 움직이지 않는 얼굴, 그러나 이미 수많은 경험이 응축되어 있는 얼굴이다.
설리는 가능한 모든 선택지를 머릿속에서 빠르게 소거한다. 회항은 불가능하다. 다른 공항은 도달할 수 없다.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강.
이 판단은 매뉴얼에 없는 판단이다. 규정은 언제나 이상적인 조건을 전제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언제나 규정을 벗어난다. 이 지점에서 인간의 판단이 필요해진다.
〈설리〉는 판단을 ‘용기’라는 단어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축적된 경험’이라는 단어에 가깝게 다룬다. 설리는 천재적인 파일럿이기 전에, 오랜 시간 실패와 위험을 몸으로 통과해 온 직업인이다.
착수 직후에도 설리는 안도하지 않는다. 그는 계속해서 고개를 돌리고, 승객을 확인하고, 상황을 점검한다. 사건은 끝났지만, 그의 판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영화가 인상적인 이유는, 설리가 단 한 번도 “잘했다”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결과가 좋았기 때문에 판단이 옳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끊임없이 그 순간을 되돌린다. 만약 조금만 더 고도가 있었다면, 만약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이 반복은 트라우마이자 책임의 증거다.
〈설리〉는 말한다. 진짜 판단이란 확신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도 감당하겠다고 결심하는 태도라고.
기적을 설명하려는 합리성과 그 한계
모두가 살아남은 뒤, 시스템은 즉시 움직인다. 조사위원회, 청문회, 시뮬레이션. 이 모든 과정은 합리적이고, 목적 또한 명확하다. 사고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문제는 시스템이 사용하는 언어다. 데이터, 확률, 재현 실험. 이 언어는 감정을 제거하고, 인간의 맥락을 평균값으로 환원한다.
시뮬레이션 속 조종사들은 공항으로 되돌아가는 데 성공한다. 숫자는 말한다. “강에 착수하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이 숫자에는 빠져 있는 것이 있다. 실제 상황에서 인간이 위험을 인지하는 데 필요한 시간, 공포가 판단을 지연시키는 순간, 현실의 소음과 혼란.
설리는 이 빠진 요소를 말로 설명해야 한다. 그는 “그 몇 초”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시스템은 그 몇 초를 변수로 인정하지 않는다.
〈설리〉가 불편한 이유는 시스템을 악으로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조사관들은 냉정하고, 규정을 따르며, 악의가 없다.
바로 이 점이 핵심이다. 문제는 악의가 아니라, 인간을 삭제한 합리성이다.
시스템은 언제나 사후적으로 완벽해진다. 그러나 인간의 판단은 언제나 불완전한 현재에서 이루어진다. 이 간극을 누군가는 홀로 감당해야 한다.
설리는 영웅이기 때문에 의심받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살아남았기 때문에 의심받는다. 결과가 완벽했기에, 과정은 더 완벽해야 한다는 요구가 생긴다.
〈설리〉는 묻는다. 우리는 언제 인간의 판단을 신뢰하는가. 규정에 맞았을 때인가, 아니면 책임을 떠안았을 때인가.
끝까지 책임을 진다는 것의 의미
〈설리〉의 마지막까지도 설리는 편안해지지 않는다. 그는 환호 속에서도 고립되어 있다. 영웅이라는 호칭은 그에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의 악몽은 반복된다. 비행기는 건물로 향하고, 사람들은 죽는다. 그는 자신이 만든 기적이 언제든 참사가 될 수 있었음을 알고 있다.
청문회에서 밝혀지는 사실은 단순하다. 시뮬레이션에 인간의 반응 시간을 추가하자 결과는 달라진다. 회항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이 증명은 사건이 끝난 뒤에야 가능했다. 이 사실이 이 영화를 더 씁쓸하게 만든다.
〈설리〉는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만약 단 한 명이라도 희생되었다면, 이 판단은 여전히 존중받았을까.
책임이란 결과가 좋았기 때문에 인정받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결과를 알 수 없는 순간에도 선택을 떠안는 것이다.
설리는 영웅이 아니라 직업인이다. 그는 자신의 일을 했고, 그 일의 결과를 끝까지 감당했다.
이 영화가 말하는 진짜 기적은 허드슨강 착수가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시스템과 데이터, 끝없는 의심 앞에서도 자신의 판단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설리〉는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조용히 묻는다. 우리는 지금, 인간의 판단을 어디까지 신뢰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그 신뢰는 언제, 어떤 조건에서만 허락되고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