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리뷰] 원스 (만남, 창작, 이별)

lhs2771 2025. 12. 30. 08:14

원스 영화 포스터

 

원스, 사랑이 끝나도 음악은 남고 음악이 끝나도 삶은 계속된다

원스는 거리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만남을 통해 사랑과 음악, 그리고 현실적인 이별의 풍경을 조용히 그려낸다. 이 영화에는 극적인 고백도, 운명적인 키스도, 모든 것을 바꾸는 사건도 없다. 대신 기타 한 대, 낡은 피아노, 그리고 서로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건네는 두 사람이 있을 뿐이다. 〈원스〉는 사랑을 완성의 이야기로 다루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사랑은 잠시 스쳐 가는 감정이며, 서로의 삶을 완성해 주기보다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만드는 계기에 가깝다. 음악은 이 관계를 이어주는 언어이자, 동시에 이별을 가능하게 만드는 매개다. 그래서 〈원스〉는 달콤하기보다 현실적이고, 낭만적이기보다 정직하다. 이 영화는 묻는다. 사랑이 반드시 함께하는 미래로 이어져야만 진짜일까. 그리고 조용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답한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만남

〈원스〉의 시작은 특별하지 않다. 남자는 낮에는 진공청소기를 고치고, 밤에는 거리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한다. 여자는 꽃을 팔고, 생계를 위해 피아노를 조율하며 살아간다. 이들의 만남에는 영화적인 장치가 없다. 우연히 마주치고, 말을 섞고, 음악을 나눈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이 만남을 과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첫눈에 반하지도, 운명이라 느끼지도 않는다. 대신 조심스럽게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다.

남자는 음악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드러낸다. 과거의 연인, 실패한 관계,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노래 속에 담겨 있다. 그는 말보다 음악으로 더 솔직해진다.

여자는 그의 노래를 듣고 질문한다. 노래가 누구를 향한 것이냐고, 왜 그렇게 슬픈 소리를 내는지 묻는다. 이 질문은 호기심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나온다.

이 영화에서 만남은 즉각적인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공감의 시작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삶에 깊이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을 공유한다.

음악은 이 관계의 언어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노래를 통해 전달된다. 이때 음악은 배경이 아니라 대화다.

〈원스〉는 음악을 통해 관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매우 섬세하게 그린다. 합을 맞추고, 리듬을 조율하며, 상대의 숨결에 귀를 기울이는 과정은 관계를 쌓는 일과 닮아 있다.

이 만남은 현실적이다. 두 사람은 각자의 삶을 가지고 있고, 그 삶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만남은 더 소중하고, 동시에 불안하다.

이 영화는 만남을 시작이 아니라 질문으로 만든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며 무엇을 기대하는가. 그리고 그 기대는 얼마나 현실적인가.

 

창작

두 사람은 함께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서로의 내면을 공유하는 행위다.

노래를 만든다는 것은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꺼내 놓는 일이다. 가사 한 줄, 멜로디 한 음에는 삶의 조각이 담긴다.

남자는 여자를 통해 다시 음악을 믿게 된다. 그는 음악이 실패의 기억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는 감정임을 깨닫는다.

여자는 남자를 통해 자신의 재능을 확신하게 된다. 그녀는 늘 현실에 발이 묶여 있었고, 음악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 만남은 그녀에게 선택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창작은 로맨틱하게 포장되지 않는다. 의견 충돌이 있고, 조율이 필요하며, 현실적인 제약도 따른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함께할 때 가장 솔직해진다. 음악 앞에서는 거짓말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녹음실 장면은 이 영화의 정점이다. 이곳에서 두 사람은 가장 가까워지지만, 동시에 가장 멀어진다.

음악이 완성될수록, 이 관계의 끝도 또렷해진다. 음악은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원스〉는 창작이 관계를 완성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도, 삶의 방향이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묻는다. 사랑과 꿈이 충돌할 때,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이별

〈원스〉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이별을 다루는 방식이다. 이 영화에는 명확한 고백도, 공식적인 이별 장면도 없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지만, 그 마음을 소유하지 않는다. 사랑은 있지만, 함께할 미래는 없다.

남자는 다른 나라로 떠난다. 여자는 자신의 삶으로 돌아간다. 이 선택에는 배신도, 갈등도 없다.

이별은 슬프지만 비극적이지 않다. 그것은 삶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결과다.

이 영화는 사랑을 영원함으로 증명하지 않는다. 대신 사랑이 남긴 흔적으로 그 진정성을 증명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삶을 완성해 주지 않았지만, 방향을 바꿔주었다. 이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사랑의 형태다.

마지막에 남자가 여자에게 남기는 선물은 감정의 소유가 아니라 응원이다.

여자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고, 남자는 다른 무대에서 노래한다. 음악은 이어지지만, 관계는 끝난다.

〈원스〉는 이별을 실패로 정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장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이 영화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어떤 사랑은 함께하지 않아도 충분히 진짜일 수 있다고.

그래서 〈원스〉는 보고 나면 오래 남는다. 우리가 지나쳐온 관계들, 끝났지만 의미 있었던 만남들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끝날 수 있지만, 그 사랑이 남긴 변화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이 영화가 가장 조용하게 건네는 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