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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원 데이 (반복, 다른 성장 속도, 허락하지 않는 인생)

lhs2771 2025. 12. 22. 08:58

원 데이 영화 속 한 장면

 

원 데이, 우리는 늘 서로를 사랑했지만 단 한 번도 같은 순간에 서 있지 않았다

원 데이는 7월 15일이라는 단 하루를 기준으로, 20여 년에 걸쳐 반복적으로 교차하는 두 남녀의 인생을 따라가며 사랑과 시간의 잔혹한 불일치를 집요하게 기록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왜 연인이 되지 못했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왜 그 사랑이 언제나 한 발 늦었는지를 보여준다. 엠마와 덱스터는 서로를 가장 깊이 이해한 사람이었지만, 가장 결정적인 순간마다 다른 선택을 했다. 〈원 데이〉는 사랑이 없어서 실패한 관계가 아니라, 사랑이 있었기에 더 아플 수밖에 없었던 관계를 통해, 감정보다 더 냉정한 것은 타이밍과 성장의 속도라는 사실을 조용히 그러나 끝까지 밀어붙이는 영화다.

같은 날은 반복되지만, 같은 사람으로 남아 있지는 않았다

〈원 데이〉는 구조 자체가 감정이다. 이 영화는 연속적인 시간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매년 단 하루, 7월 15일 만을 선택해 두 사람의 삶을 보여준다. 이 방식은 관객에게 묘한 불안을 남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는 같지만, 그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은 매번 달라진다는 사실을.

처음 만난 날, 엠마와 덱스터는 대학 졸업이라는 동일한 출발선에 서 있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보는 미래는 전혀 다르다. 덱스터는 자신이 특별하다는 확신 속에서 인생을 대하고, 엠마는 자신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불안 속에서 삶을 설계한다. 이 감정의 비대칭은 두 사람의 관계를 처음부터 어긋나게 만든다.

중요한 점은, 이 어긋남이 갈등으로 즉시 폭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친구가 되고, 서로를 위로하며,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곁에 머문다. 하지만 바로 그 ‘곁’이라는 위치가 가장 잔인한 거리다. 너무 가깝기에 고백할 수 없고, 너무 오래 함께했기에 관계를 바꾸기 두려운 상태.

〈원 데이〉는 이 애매한 관계를 낭만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상태가 얼마나 많은 오해와 침묵을 낳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가 묻는 첫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정말 타이밍이 없어서 사랑을 놓친 걸까, 아니면 용기가 없어서 시간을 핑계로 삼은 걸까.

 

사랑은 있었지만, 성장은 항상 다른 속도로 진행됐다

시간이 흐르며 두 사람의 삶은 점점 더 다른 궤도를 그린다. 덱스터는 빠르게 성공한다. 그는 매력적이고,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삶을 쉽게 소비한다. 그러나 이 성공은 그를 성숙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계속 미룬다.

반면 엠마는 느리게 성장한다. 그녀는 실패하고, 좌절하며, 스스로를 의심한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조금씩 명확해진다. 이 느림은 약점이 아니라 단단함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이 두 성장의 속도가 결코 맞춰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 데이〉의 가장 잔인한 구조는 여기에서 드러난다. 한 사람이 감정을 고백할 준비가 되었을 때, 다른 한 사람은 아직 그 자리에 서 있지 않다. 한 사람이 인생을 돌아볼 여유를 가질 때, 다른 한 사람은 여전히 도망치고 있다. 이 어긋남은 단 한 번도 해결되지 않는다.

영화는 반복해서 ‘말하지 못한 순간들’을 보여준다. 엠마가 덱스터에게 기대를 접는 순간, 덱스터가 엠마를 의지하면서도 책임지지 않는 순간, 서로를 향한 감정이 대화 대신 농담과 침묵으로 흘러가는 순간들. 이 말해지지 않은 감정들은 시간이 쌓일수록 관계의 무게가 된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이 영화가 누구의 잘못도 쉽게 규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덱스터는 분명 미성숙하지만 악의적이지 않다. 엠마는 현명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숨긴다. 이 관계는 잘못된 선택의 결과라기보다, 인간적인 두려움의 축적에 가깝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은 여러 번 다시 만난다. 그때마다 인생은 새로운 장애물을 들이민다. 다른 연인, 상실, 책임, 후회. 사랑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삶은 그 사랑을 우선순위로 두지 않는다. 〈원 데이〉는 이 현실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이 맞아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온다. 두 사람은 충분히 성장했고, 서로를 이해할 준비도 되어 있다. 이때 관객은 본능적으로 안도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여기서 가장 잔인한 선택을 한다. 인생은 사랑의 준비가 끝났다고 해서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드러낸다.

 

사랑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인생은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원 데이〉의 결말이 남기는 슬픔은 단순한 비극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될 수 있었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데서 오는 상실이다. 관객은 이미 알고 있다. 이 사랑이 얼마나 오래 어긋나 있었는지, 그리고 그 어긋남이 결국 어떤 대가를 요구할지를.

이 영화는 사랑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사랑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타이밍, 선택, 성장의 속도, 그리고 말하지 못한 감정들. 이 모든 것이 동시에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면, 사랑은 끝내 삶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영화는 끝까지 숨기지 않는다.

〈원 데이〉를 보고 나면, 관객은 자신의 인생 속 ‘같은 날’을 떠올리게 된다. 그때 말했더라면 달라졌을 순간, 용기를 냈다면 바뀌었을 관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하루. 이 영화는 그런 기억들이 결코 개인의 실패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조용한 위안을 남긴다.

결국 〈원 데이〉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있었지만, 인생은 늘 그 사랑보다 한 발 앞서 달려간다고. 그래서 우리는 종종 같은 날에 서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고. 이 영화는 그 불완전하고 잔인한 진실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질문으로 관객의 마음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