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리뷰] 캐치 미 이프 유 캔 (도망, 추격, 장착)

lhs2771 2025. 12. 26. 15:56

캐치 미 이프 유 캔 영화 속 한 장면

 

캐치 미 이프 유 캔, 다른 사람이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소년의 긴 도주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실존 인물 프랭크 애버그네일 주니어의 범죄 행각을 경쾌한 리듬으로 그린 영화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훨씬 쓸쓸한 성장 서사가 숨겨져 있다. 이 영화는 위조 수표와 가짜 신분증, 기상천외한 탈출을 통해 범죄의 쾌감을 전달하는 대신, 왜 한 소년이 그렇게까지 ‘다른 사람’이 되려 했는지, 왜 도망은 멈추지 않았고 왜 붙잡힘조차 일종의 안식이 되었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잡히지 않는 천재의 이야기라기보다, 무너진 가정과 사라진 보호 속에서 정체성을 만들어야 했던 한 아이의 불완전한 성장기다. 이 영화가 오래 남는 이유는 범죄의 영리함이 아니라, 그 영리함 뒤에 숨겨진 결핍이 너무도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도망

프랭크 애버그네일 주니어의 삶에서 가장 큰 사건은 위조 수표가 아니다. 그것은 부모의 이혼이다. 이 영화는 분명히 보여준다. 그의 도망은 범죄에서 시작되지 않았고, 가족의 붕괴에서 시작되었다.

어른들이 약속했던 안정은 갑자기 사라지고, 보호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사랑은 협상 대상이 된다. 프랭크는 이 순간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리고, ‘견디기’에는 너무 민감하다.

그가 선택한 방식은 어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상적인 경로가 아니다. 그는 너무 빨리, 너무 과하게 어른의 역할을 연기한다.

파일럿은 하늘을 지배하는 직업이고, 의사는 생사를 결정하며, 변호사는 법의 언어를 다룬다. 이 직업들은 공통점이 있다. 사회가 무조건적으로 신뢰하는 얼굴이라는 점이다.

프랭크는 범죄자가 되기 전에, 사회가 신뢰를 어떻게 배분하는지를 정확히 간파한다. 그는 능력을 증명하지 않는다. 대신 ‘의심받지 않는 외형’을 갖춘다.

이 영화가 날카로운 이유는 여기 있다. 사람들은 서류를 보지 않고, 질문을 하지 않으며, 직함을 먼저 믿는다. 프랭크는 이 믿음을 연기한다.

그는 돈보다 ‘역할’을 훔친다. 왜냐하면 역할이 있으면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복을 입으면 질문받지 않고, 직함이 있으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 도망에는 치명적인 대가가 따른다. 그는 어디에도 머물지 못한다. 늘 환영받지만, 결코 머무를 수는 없다.

호텔 방은 바뀌고, 이름은 바뀌며, 국경은 넘어가지만, 그 안에 있는 프랭크는 점점 비워진다. 그는 너무 많은 사람이 되었고, 그래서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 모르게 된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말한다. 도망은 자유가 아니라, 정착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그리고 이 상태는 결국 스스로를 소진시킨다고.

 

추격

프랭크와 칼 핸러티의 관계는 단순한 쫓고 쫓기는 구도가 아니다. 이 둘은 서로의 결핍을 비추는 존재다.

칼은 제도를 믿는 사람이다. 규칙은 지켜진다고 믿고, 질서는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세계가 설명 가능하다고 여긴다.

프랭크는 그 믿음의 틈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다. 그는 규칙이 얼마나 형식적인지를, 질서가 얼마나 사람의 믿음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안다.

이 둘의 추격전은 지능 싸움이 아니라, 세계관의 충돌이다. 규칙을 믿는 사람과 규칙을 연기하는 사람.

흥미로운 점은, 이 추격이 점점 감정적인 관계로 변해간다는 것이다. 칼은 프랭크를 범죄자로만 보지 않는다. 그는 점점 이 소년의 나이를, 고립을, 외로움을 인식한다.

프랭크 역시 칼에게서 묘한 안정감을 느낀다. 그는 전화를 걸어 자신의 성공을 말하고, 실패를 고백한다. 이것은 조롱이 아니라,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가깝다.

이 관계는 아이러니하다. 프랭크는 가족에게서 도망쳤지만, 자신을 쫓는 사람에게서 가장 안정적인 ‘어른의 시선’을 발견한다.

칼은 법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프랭크에게는 유일하게 일관된 존재다.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역할로, 끝까지 그를 따라온다.

이 추격은 결국 끝나야 한다. 프랭크가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도망치는 삶이 그를 지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이 관계를 통해 말한다. 진짜 처벌은 붙잡힘이 아니라, 끝없이 도망쳐야 하는 상태라고.

 

정착

프랭크가 붙잡히는 순간, 영화는 클라이맥스를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리듬을 낮춘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붙잡힘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감옥은 자유의 상실이지만, 동시에 역할에서 벗어나는 공간이다. 그는 더 이상 연기하지 않아도 된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속이지 않아도 된다.

이 정지는 프랭크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멈춤’이다. 그는 도망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처음으로 갖는다.

이 영화가 성숙한 이유는, 이 상태를 단순한 처벌로 그리지 않기 때문이다. 붙잡힘은 실패가 아니라, 전환점이다.

프랭크는 자신의 재능을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게 된다. 시스템을 속이던 능력은, 이제 시스템을 이해하고 보완하는 능력이 된다.

이 변화는 교훈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성장의 결과다. 그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이 될 필요가 없는 자리’를 얻는다.

칼과의 관계 역시 변화한다. 추격자는 보호자가 되고, 감시자는 동료가 된다. 이 관계는 갑작스럽지 않고,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여기서 조용히 묻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법을 지키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자리를 받아들이는 것인가.

프랭크의 마지막은 화려하지 않다. 그는 더 이상 달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멈춤은 패배가 아니라, 처음으로 얻은 정착이다.

이 영화가 오래 남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한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던 순간’을 지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은 대부분 도망과 닮아 있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말한다. 진짜 성장은 잡히지 않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아도 되는 순간에서 시작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