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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택시 드라이버 (고립, 환상, 폭력)

lhs2771 2025. 12. 27. 15:15

영화 택시 드라이버 포스터

 

택시 드라이버, 구원받지 못한 한 남자가 도시를 바라보는 가장 위험한 방식

택시 드라이버는 고독한 택시 기사 트래비스 비클이 뉴욕이라는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개인의 고립이 어떻게 폭력적인 환상으로 변질되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가는 영화다. 이 작품은 정의를 실현하는 영웅의 탄생을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왜 한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자라 믿게 되었는지, 왜 사회는 그런 착각을 막지 못했는지를 불편할 정도로 정직하게 보여준다. 〈택시 드라이버〉는 폭력의 결과보다 폭력이 형성되는 과정에 집중하며, 고독과 분노, 왜곡된 정의감이 결합될 때 어떤 위험한 서사가 만들어지는지를 끝까지 응시한다. 이 영화가 시대를 넘어 계속 회자되는 이유는, 트래비스라는 인물이 결코 과거에만 존재했던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립

트래비스 비클은 도시 한가운데서 살아가지만,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인물이다. 그는 밤의 뉴욕을 달리는 택시 기사로 일하며, 누구보다 많은 사람을 보지만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는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그를 사회의 외부에 위치시킨다.

그의 일상은 불면과 반복으로 구성되어 있다. 잠들지 못하는 밤, 목적 없이 흘러가는 시간, 그리고 의미 없는 대화들. 트래비스의 삶에는 방향이 없다. 그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그저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택시 드라이버〉에서 뉴욕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트래비스의 내면을 확장한 공간이다. 더럽고, 소음이 가득하며, 언제든 폭력이 터질 수 있는 이 도시는 그의 시선 속에서 점점 혐오의 대상이 된다.

트래비스는 사람들을 관찰하지만, 이해하지 않는다. 그는 도시를 ‘정화되어야 할 곳’으로 규정하며,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벌레처럼 바라본다. 이 시선은 사회적 비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의 고립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어 기제에 가깝다.

그의 고독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과 연결될 수 없다는 감각, 그리고 그 원인을 외부에서만 찾으려는 태도다. 그는 세상이 자신을 거부했다고 느끼지만, 동시에 스스로도 세상을 거부한다.

트래비스는 정치 집회에 나가고, 사람들 사이에 서 보지만, 그 어디에서도 자리를 찾지 못한다. 그는 늘 어색하고, 늘 불안하며, 늘 주변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다.

〈택시 드라이버〉는 이 고립을 병리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이 어떻게 일상의 반복 속에서 점점 굳어지는지를 차분히 보여준다. 고립은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습관처럼 쌓인다.

이 영화는 묻는다. 고독이 길어질 때,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의미를 만들어내려 하지 않는지를.

 

환상

트래비스는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 이야기는 단순하다. 이 도시는 썩었고, 누군가는 그것을 청소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문제는 그 ‘누군가’가 점점 자기 자신으로 구체화된다는 점이다. 그는 더 이상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행동해야 할 존재라고 느낀다.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는, 트래비스의 생각이 완전히 이해 불가능하지 않다는 데 있다. 도시의 폭력, 부패, 무관심은 실제로 존재한다. 그러나 트래비스는 이 문제를 개인의 폭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의 환상은 점점 강화된다. 거울 앞에서 총을 들고 자신에게 말을 거는 장면은, 그가 이미 스스로를 또 다른 인격으로 분리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한테 하는 말이야?”라는 질문은 타인에게 던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확인이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어 한다.

아이리스와의 만남은 이 환상을 더욱 강화한다. 그는 그녀를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고, 그녀의 삶을 구원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한다.

이 선택은 선의처럼 보이지만, 실은 위험하다. 트래비스는 아이리스의 의사를 완전히 배제한 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그녀를 구원하려 한다.

〈택시 드라이버〉는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타인을 위한다는 명분이 언제 폭력으로 변질되는지를.

트래비스의 환상은 점점 현실과 구분되지 않게 된다. 그는 이미 자신이 선택한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 이야기의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폭력

영화의 마지막 폭력은 갑작스럽지 않다. 그것은 이미 충분히 예고된 결과다. 트래비스는 오랫동안 이 결말을 향해 자신을 밀어붙여 왔다.

이 장면에서 〈택시 드라이버〉는 폭력을 미화하지 않는다. 총격은 혼란스럽고, 어설프며, 잔혹하다. 영웅적인 순간은 없다.

트래비스는 살아남지만, 그것이 구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회는 그의 폭력을 왜곡된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영웅으로 소비되고, 그의 행위는 미화된다. 이 아이러니가 이 영화를 더욱 섬뜩하게 만든다.

〈택시 드라이버〉는 말한다. 사회는 때로, 폭력의 동기를 검증하기보다 결과에 따라 의미를 부여한다고.

트래비스는 변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고독하며, 여전히 도시를 달린다. 다만 이제 그는 자신이 옳았다는 사회적 승인까지 얻게 된다.

이 결말은 희망이 아니다. 그것은 경고다. 고립된 개인의 폭력이 사회적 서사로 포장될 때, 더 큰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

〈택시 드라이버〉가 지금까지도 강력한 이유는, 이 구조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트래비스는 특정 시대의 인물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 등장할 수 있는 얼굴이다.

이 영화는 마지막까지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에게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지금, 어떤 고독을 방치하고 있는지를.

〈택시 드라이버〉는 조용히 말한다. 폭력은 갑자기 발생하지 않는다고. 그것은 이해받지 못한 시간들이 만들어낸 가장 위험한 결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