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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트리 오브 라이프 (질문, 가족, 자연)

lhs2771 2025. 12. 23. 20:42

트리 오브 라이프 영화 속 한 장면

 

트리 오브 라이프, 한 아이의 기억으로 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는 한 가족의 성장과 상실을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 고통의 이유, 사랑과 신의 침묵을 동시에 사유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이야기보다 감각을, 설명보다 질문을 선택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 형제간의 질투와 죄책감, 죽음 앞에서의 혼란은 우주의 탄생과 진화, 자연의 흐름과 병치된다. 〈트리 오브 라이프〉는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는 왜 태어났고, 왜 사랑하며, 왜 상실 앞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지. 이 영화는 답을 주지 않지만, 질문을 끝까지 놓아주지 않는다.

질문

〈트리 오브 라이프〉는 줄거리로 시작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은 하나의 질문이다. “주님, 당신은 어디 계셨나요?” 이 질문은 명확한 대상을 향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도이자 항의이며, 동시에 절망이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친절하지 않다. 인물의 설명도, 관계의 정리도 없다. 대신 파편처럼 흩어진 기억과 이미지가 이어진다. 이 불친절함은 의도적이다. 왜냐하면 삶 자체가 우리에게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한 가족의 상실에서 비롯된다. 어린 아들의 죽음. 설명될 수 없고, 납득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이 영화는 위로를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더 크게 확장한다. 왜 선한 사람에게 고통이 찾아오는가. 왜 사랑은 언제나 상실을 동반하는가.

〈트리 오브 라이프〉는 이 질문을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을 품은 채 살아가는 인간의 태도를 보여주려 한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답 없는 상태’를 유지한다.

이 점에서 이 영화는 신앙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신앙을 가진 인간의 불안을 다룬 영화에 가깝다. 믿고 싶지만 이해할 수 없고, 기도하지만 응답을 받지 못하는 상태. 이 영화는 바로 그 지점에 머문다.

 

가족

영화의 중심에는 한 가족이 있다. 텍사스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 엄격하고 권위적인 아버지, 부드럽고 헌신적인 어머니,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라는 아이들. 이 가족은 특별하지 않기에 오히려 보편적이다.

아버지는 ‘세상의 방식’을 대표한다. 경쟁, 성취, 강함, 질서. 그는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늘 조건과 기대를 동반한다. 그의 폭력은 악의라기보다 실패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다. 그는 세상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기에, 아이들이 약해질까 두려워한다.

어머니는 ‘자연의 방식’을 상징한다. 그녀의 사랑은 조건이 없다. 아이들이 무엇이 되든,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녀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녀의 신앙은 확신이 아니라 신뢰에 가깝다. 이해하지 못해도 받아들이는 태도다.

아이들은 이 두 방식 사이에서 자란다. 강해지고 싶지만, 동시에 사랑받고 싶다. 순수하지만, 점점 세상의 규칙을 배워간다. 이 과정에서 아이의 마음에는 설명할 수 없는 균열이 생긴다.

특히 장남 잭의 내면은 이 영화의 정서적 중심이다. 그는 아버지를 사랑하면서도 두려워하고, 어머니를 동경하면서도 그 연약함을 부끄러워한다. 이 양가적인 감정은 죄책감으로 변하고,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한 분노로 이어진다.

〈트리 오브 라이프〉는 이 감정을 대사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의 시선, 몸짓, 숨결로 보여준다. 물에 손을 담그는 장면, 햇빛을 바라보는 순간, 형제를 괴롭힌 뒤 느끼는 공허함. 이 장면들은 우리가 실제로 기억하는 방식과 닮아 있다.

이 영화에서 가족은 보호의 공간이자 상처의 공간이다. 사랑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사랑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그리고 바로 그 불완전함이 인간의 고통을 만들어낸다.

 

자연

영화 중반, 이 가족의 이야기는 अचानक 우주의 탄생으로 확장된다. 빅뱅, 별의 생성, 지구의 탄생, 생명의 진화. 이 장면들은 많은 관객을 당황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확장은 이 영화의 핵심이다. 〈트리 오브 라이프〉는 말한다. 개인의 고통은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고. 우리의 슬픔은 우주적 시간 속에 놓여 있다고.

자연은 잔인하면서도 아름답다. 생명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동시에 사라진다. 이 흐름 속에서 인간의 삶은 미미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미미함 속에서도 사랑과 기억이 어떻게 의미를 갖는지를 보여준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해변의 장면은 이 영화의 정서적 귀결이다.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이 한 공간에 존재한다. 이 장면은 현실이 아니다. 그것은 화해에 가깝다. 이해가 아니라 받아들임이다.

이 영화는 끝내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삶은 설명되지 않지만, 느껴질 수는 있다고. 고통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 안에서도 사랑은 계속된다고.

〈트리 오브 라이프〉가 오래 남는 이유는, 그것이 명확한 메시지를 주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확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객은 이 영화 앞에서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하는 사람이 된다.

이 영화는 한 가족의 기억을 통해 인간 존재 전체를 바라본다. 그래서 어렵고, 불편하며, 때로는 지치게 만든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이 영화는 잊히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같은 질문을 품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