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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패터슨 (하루, 시, 존재)

lhs2771 2025. 12. 22. 20:39

패터슨 영화 속 한 장면

패터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한 인간을 끝내 무너지지 않게 만드는 방식

패터슨은 뉴저지의 소도시 패터슨에서 버스 운전사로 살아가는 한 남자의 반복적인 일상을 따라가며, 삶의 의미가 성취나 변화가 아닌 ‘지속되는 태도’와 ‘존재를 대하는 방식’ 속에 있음을 조용히 증명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에는 갈등도, 위기도, 극적인 반전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출근하고, 버스를 운전하며, 시를 쓰고, 아내와 대화를 나누고, 개를 산책시키는 루틴이 차분하게 반복된다. 〈패터슨〉은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이루지 않아도, 누구에게 증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을 어떤 주장도 없이, 오직 ‘하루의 반복’으로만 대답한다.

하루

〈패터슨〉의 하루는 시작부터 끝까지 예측 가능하다. 영화는 관객에게 놀라움을 제공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 영화는 관객이 “아, 또 이 장면이구나”라고 느끼게 만들며, 그 익숙함을 끝까지 유지한다. 패터슨은 매일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같은 계단을 내려오고, 같은 길을 걸어 출근한다.

이 반복은 지루함이 아니라 구조다. 우리는 흔히 반복을 정체로, 변화 없음으로, 실패로 인식한다. 하지만 〈패터슨〉은 반복을 삶의 기본 단위로 제시한다. 인간은 반복 속에서만 자신을 유지할 수 있으며, 반복이 무너질 때 비로소 불안이 시작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패터슨의 하루에는 목표가 없다. 그는 승진을 꿈꾸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설계하지 않으며, 미래를 위한 전략을 세우지도 않는다. 이 태도는 무기력이나 체념과는 다르다. 그는 현재의 삶을 ‘충분하다’고 받아들인다. 이 충분함은 포기가 아니라 선택이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묻는다. “그래서 너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하지만 〈패터슨〉은 이 질문 자체를 무효화한다. 패터슨은 이미 ‘살고 있는 사람’이며, 그 이상이 되기를 요구받지 않는다. 이 영화의 급진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패터슨은 시를 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시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의 시는 발표되지 않고, 평가되지 않으며, 경쟁에 놓이지 않는다. 그는 시를 ‘만들기’보다 ‘살아낸다’. 그의 시는 성냥갑, 맥주잔, 아내의 말투, 거리의 풍경 같은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시적 태도는 삶 전체로 확장된다. 패터슨은 세상을 관찰하지만 해석하지 않는다. 그는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그것을 판단하지 않으며, 의미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한 발 물러나 있다.

중요한 것은, 패터슨이 자신의 시를 세상에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다. 그의 시는 인정받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는 그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며, 자기 자신을 유지하는 장치다.

이 태도는 예술을 ‘성과’로 소비하는 현대적 관점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우리는 흔히 예술이 공개되고 소비될 때만 의미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패터슨〉은 묻는다. 아무도 보지 않는 시도 여전히 시일 수 있는가. 이 영화는 분명하게 대답한다. 그렇다고.

패터슨의 아내 로라는 이와 대조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자신의 창작을 세상과 나누고 싶어 한다. 컵케이크, 커튼, 기타, 음악. 그녀의 에너지는 확장과 표현을 향한다.

이 대비는 갈등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로라는 패터슨을 재촉하지 않고, 패터슨은 로라를 억압하지 않는다. 이 관계의 핵심은 이해가 아니라 존중이다. 사랑은 상대를 변화시키려는 욕망이 아니라, 서로 다른 리듬을 허락하는 태도임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존재

영화 중반, 패터슨은 자신에게 매우 중요한 것을 잃는다. 그가 써온 시들이 사라진다. 이것은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사건이자, 유일하게 명확한 상실이다. 관객은 이 순간, 패터슨이 무너질 것이라 예상한다.

하지만 그는 무너지지 않는다. 그는 슬퍼하지만 절망하지 않는다. 이 반응은 이 영화의 모든 철학을 응축한다. 패터슨에게 시는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사라진 것은 종이 위의 문장이지만, 시를 바라보는 태도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후 패터슨은 다시 걷고, 다시 바라보고, 다시 쓴다. 그는 처음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간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말한다. 삶은 언제든 다시 시작될 수 있지만, 그것은 결심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낯선 시인은 이 영화의 은유다. 그는 패터슨에게 빈 노트를 건네며 말한다. “시에는 끝이 없다.” 이 말은 시에 대한 말이자, 삶에 대한 말이다. 인간의 하루는 언제나 미완이며, 그렇기에 계속될 수 있다.

〈패터슨〉은 조용하지만 가장 radical 한 영화다. 이 영화는 성취하지 않아도, 인정받지 않아도, 변화하지 않아도 인간의 삶은 충분히 존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결국 이 영화는 이렇게 말한다. 의미 있는 삶이란 특별한 이야기를 갖는 것이 아니라, 같은 하루를 정직하게 살아내는 태도를 갖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태도를 지켜낸 사람은,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끝내 무너지지 않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