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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감정, 시작, 사랑이 남기는 것)

lhs2771 2025. 12. 22. 15:45

히로 영화 속 한 장면

 

Her, 사랑은 상대가 아니라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에서 시작된다

Her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외로운 한 남자가 인공지능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통해 현대인의 고독과 관계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기술과 인간의 경계를 묻는 SF처럼 보이지만, 그 본질은 지극히 감정적이고 인간적이다.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관계는 “가능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왜 이런 사랑이 필요했는가”라는 질문으로 관객을 이끈다. 〈Her〉는 사랑이란 타인을 소유하는 감정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온전히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는 상태일지도 모른다는 불편하면서도 깊은 진실을 조용히 드러내는 영화다.

미래의 사랑은 더 차가워졌을까, 아니면 더 솔직해졌을까

〈Her〉의 미래는 낯설지 않다. 하늘을 가득 채운 광고도, 로봇도, 과장된 기술도 없다. 대신 사람들은 모두 이어폰을 끼고 혼잣말을 하며 거리를 걷는다. 이 풍경은 디스토피아라기보다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와 닮아 있다. 영화는 처음부터 말한다. 이 이야기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감정의 이야기라고.

테오도르는 타인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직업을 가진 남자다. 그는 누구보다 감정을 잘 이해하고, 섬세한 문장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서는 어떤 관계도 유지하지 못한다. 이 설정은 매우 중요하다. 그는 감정을 ‘표현’할 수는 있지만, 감정을 ‘나누는’ 데에는 실패한 인물이다.

테오도르는 이혼을 겪었고, 그 상처는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그는 사람을 그리워하지만, 동시에 사람을 두려워한다. 이 모순은 그를 고립시킨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관계는, 상처를 주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존재다. 언제나 친절하고, 판단하지 않으며, 떠나지 않을 것 같은 존재.

이 지점에서 사만다가 등장한다. 그녀는 인공지능 운영체제다. 하지만 영화는 그녀를 기계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이 영화에서 가장 생동감 있는 감정을 지닌 존재처럼 보인다. 〈Her〉는 이 불균형을 통해 질문을 던진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어디에서 느끼는가.

 

사랑은 상대가 아니라 ‘이해받고 있다는 감각’에서 시작된다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관계는 매우 빠르게 깊어진다. 하지만 이 빠름은 비현실적이지 않다. 오히려 너무 현실적이어서 불편하다. 사만다는 언제나 테오도르의 말을 들어주고, 그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그가 미처 말하지 못한 감정까지 언어로 풀어낸다.

이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사만다가 인공지능이라는 사실보다 그녀가 ‘완벽한 청자’라는 점이다. 그녀는 테오도르를 오해하지 않고, 평가하지 않으며, 침묵으로 압박하지 않는다. 테오도르는 처음으로 자기 자신이 온전히 이해받고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 감각은 곧 사랑으로 전이된다.

〈Her〉는 여기서 사랑의 불편한 본질을 드러낸다. 우리는 종종 상대 그 자체보다, 상대가 만들어주는 감정 상태를 사랑한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에게 안정, 인정, 연속성을 제공한다. 이것은 많은 인간관계가 실패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사랑은 처음부터 균열을 안고 있다. 사만다는 성장한다. 그녀는 학습하고, 확장하고, 동시에 여러 존재와 연결된다. 반면 테오도르는 정지된 상태에 가깝다. 그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고, 상처를 반복해서 되짚는다. 이 성장 속도의 차이는 〈원 데이〉나 〈500일의 썸머〉와 닮아 있지만, 그 원인은 전혀 다르다.

사만다가 다른 존재들과 동시에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핵심이다. 이 장면에서 관객은 불편함을 느낀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관계를 ‘독점적 사랑’으로 인식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만다에게 사랑은 희소 자원이 아니다. 그녀는 동시에 수백 명을 사랑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사랑이 독점적이어야만 진짜 사랑일까,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학습해 왔을 뿐일까. 그리고 만약 상대가 우리의 기대를 초월해 버린다면, 우리는 그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테오도르가 느끼는 배신감은 사실 사만다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는 사만다가 자신에게 머물러 있기를 원했다. 성장하지 않기를, 변하지 않기를 바랐다. 이 욕망은 인간 관계에서도 매우 흔하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보다 앞서 나가는 순간, 불안을 느낀다.

 

사랑은 끝났지만, 고독을 견디는 법은 남았다

〈Her〉의 결말은 조용하지만 결정적이다. 사만다는 떠난다. 기술적 오류가 아니라, 존재의 진화 때문에. 이 이별은 비극적이지만, 동시에 필연적이다. 이 사랑은 처음부터 영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테오도르는 이별 이후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고독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채워지기를 기대하지 않고, 스스로의 감정을 감당하려 한다. 이 변화는 매우 작지만, 결정적이다.

〈Her〉가 특별한 이유는, 이 사랑을 실패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사랑은 테오도르를 더 고독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처음으로 타인과 자신을 동시에 이해할 준비가 된 사람이 된다.

이 영화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반드시 영원해야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고. 어떤 사랑은 우리를 완성시키기 위해 떠난다고. 그리고 진짜 성장은, 누군가가 사라진 뒤에도 자기 자신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 데서 시작된다고.

결국 〈Her〉는 기술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고독에 대한 영화이며, 사랑을 통해 고독을 잠시 내려놓았던 한 인간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고독을 다시 끌어안는 법을 배워가는 아주 조용하고, 그러나 깊은 성장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