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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안녕, 헤이즐 (시간, 사랑, 존엄) 안녕, 헤이즐, 우리는 왜 끝이 정해진 사랑 앞에서 더 진지해지는가 안녕, 헤이즐은 청춘 로맨스처럼 보이지만, 실은 죽음을 전제로 한 인간의 존엄과 사랑의 태도에 대해 끝까지 질문하는 영화다. 이 작품에서 사랑은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제한된 시간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헤이즐과 거스는 서로를 통해 병을 극복하지도, 기적을 얻지도 않는다. 그들은 단지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정확히 인식한 채, 그 안에서 최대한 정직하게 사랑하려 애쓴다. 〈안녕, 헤이즐〉은 죽음을 감동의 장치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이 일상에 스며든 상태에서 인간이 얼마나 섬세하고 사려 깊은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묻는다. 우리는 왜 끝이 보일 때 비로소 삶을 진지하게 대하는가. 그리고.. 2026. 1. 5.
리뷰] 캐롤 (시선, 침묵, 선택) 캐럴, 사랑은 왜 가장 조용한 순간에 가장 큰 결단이 되는가 캐롤은 금지된 사랑을 다루는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한 인간의 삶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침묵 속에 억눌려 왔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사랑은 폭발하지 않는다. 대신 시선으로 머물고, 말해지지 않은 채 유예되며, 선택되지 못한 가능성으로 남는다. 캐롤과 테레즈의 관계는 격정적인 로맨스가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처음으로 자각하는 느린 과정에 가깝다. 〈캐롤〉은 묻는다. 사랑은 언제 용기가 되는가. 그리고 그 용기는 왜 늘 가장 많은 것을 잃을 각오를 요구하는가. 이 작품은 동성애라는 사회적 금기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억압된 시대 속에서 인간이 스스로를 얼마나 오래 속이며 살아왔는지를 조용히 응시한다. 사랑은 이.. 2026. 1. 4.
리뷰] 비포 위 디사피어 (침투, 언어, 인간성) 비포 위 디사피어, 인간을 흉내 내는 존재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비포 위 디사피어는 외계 생명체가 지구를 침략하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끝까지 해체하는 영화다. 이 작품에서 침략은 총과 폭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신 언어, 관계, 직업, 사랑 같은 가장 일상적인 요소들이 하나씩 점령된다. 외계인들은 인간을 제거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을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이 이해의 과정이야말로 가장 폭력적인 침투다. 〈비포 위 디사피어〉는 묻는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감정인가, 기억인가, 언어인가. 아니면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인가. 이 영화는 그 질문을 SF의 외피 속에 숨긴 채, 가장 차갑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밀어붙인다. 그리고.. 2026. 1. 4.
리뷰]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언어, 고독, 연결)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말이 통하지 않을 때 비로소 가까워지는 관계들에 대하여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는 사랑을 다룬 영화이지만, 이 영화에서 사랑은 결코 명확한 감정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작품은 고독, 언어의 단절, 타인의 세계에 던져졌을 때 느끼는 불안 속에서 관계가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밥과 샬럿은 서로를 이해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함께 침묵하고,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설명되지 않는 감정을 나눈다. 이 영화는 묻는다. 우리는 정말로 서로를 이해해야만 가까워질 수 있는가. 혹은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관계는 오히려 더 진실해지는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번역되지 않는 감정들, 말로 옮길 수 없는 외로움, 그리고 그 틈에서 잠시 발생하는 연결.. 2026. 1. 4.
리뷰] 결혼 이야기 (사랑, 법, 이후) 결혼 이야기, 사랑이 끝났는데도 삶이 계속되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결혼 이야기는 이혼을 다룬 영화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사랑이 끝난 뒤에도 삶이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루는 작품이다. 이 영화에는 악인이 없다. 대신 서로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왜 끝내 함께 살 수 없게 되었는지가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결혼 이야기〉는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묻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사랑이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관계는 유지되지 못했는가. 그리고 사랑이 끝난 뒤에도 부모로, 예술가로, 개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어떤 감정의 잔해를 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이 영화는 격정적인 드라마를 선택하지 않는다. 대신 아주 사소한 말, 미묘한 침묵, 법적 절차라는 차가운 구조 속에서 관계가 어떻게 파편화되는지를.. 2026. 1. 4.
리뷰] 러스트 앤 본 (몸, 폭력, 회복) 러스트 앤 본, 사랑은 왜 가장 부서진 몸에서 시작되는가 러스트 앤 본은 상처 입은 두 인간이 서로를 통해 구원받는 감동적인 멜로드라마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결코 치유를 쉽게 말하지 않는다. 〈러스트 앤 본〉에서 사랑은 회복의 약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자신의 상처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폭력적인 계기다. 이 작품은 묻는다. 인간은 언제 비로소 자신의 몸을 인식하는가. 완전할 때인가, 아니면 완전히 부서졌을 때인가. 주인공 알리와 스테파니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삶에서 밀려난 존재들이며, 이 영화는 그들이 서로를 통해 나아지는 과정보다, 서로를 통해 얼마나 더 적나라하게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러스트 앤 본〉은 사랑을 위로로 포장하지 않는다. 대신 사랑이.. 2026. 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