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282

리뷰] 레볼루셔너리 로드 (환상, 현실, 붕괴) 레볼루셔너리 로드, 실패한 결혼이 아니라 끝내 선택하지 못한 삶의 초상레볼루셔너리 로드는 한 부부의 결혼이 무너지는 과정을 다루지만, 이 작품의 진짜 비극은 사랑의 소멸이나 관계의 파탄이 아니다. 이 영화가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은 ‘선택하지 않는 삶’이 만들어내는 서서히 진행되는 파괴다.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가난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실패한 인물도 아니다. 그들은 안정적인 직장, 교외의 단정한 집, 아이들, 그리고 외부에서 보기엔 충분히 성공한 삶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조건은 그들을 보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틀 안에서 두 사람은 점점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했는지 잊어간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묻는다. 우리가 안정이라 부르는 삶은 과연 안전한가. 그리고 그 질문을 통해, 실패보다 평.. 2025. 12. 30.
리뷰] 블루 자스민 (환상, 현실, 붕괴) 블루 자스민, 무너진 삶이 아니라 끝까지 놓지 못한 거짓말에 대하여 블루 자스민은 한 여자의 몰락을 다루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몰락 이후에도 끝까지 유지하려 애쓰는 ‘자기기만의 서사’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영화다. 이 작품에서 자스민은 모든 것을 잃는다. 부유했던 삶, 안정된 결혼, 사회적 지위, 그리고 스스로를 정의하던 언어까지. 그러나 영화는 그녀가 무엇을 잃었는지보다, 무엇을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다룬다. 자스민은 현실을 직면하지 않는다. 아니, 현실을 직면할 수 없는 상태로 스스로를 밀어 넣는다. 그녀는 기억을 선택적으로 편집하고, 자신의 책임을 지우며, 과거를 끊임없이 미화한다. 〈블루 자스민〉은 이 과정을 연민이나 도덕적 판단 없이, 차갑고 정확한 시선으로 따라간다. .. 2025. 12. 30.
리뷰] 아무르 (시간, 돌봄, 사랑) 아무르, 사랑이 끝까지 남는다는 말이 가장 잔인해지는 순간에 대하여 아무르는 제목만 보면 사랑을 다룬 영화처럼 보이지만, 이 작품이 보여주는 사랑은 우리가 기대하는 형태와는 정반대에 가깝다. 이 영화에는 설렘도, 낭만도, 감정을 고조시키는 음악도 없다. 대신 늙어가는 몸, 무너지는 존엄, 그리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의 고통이 있다. 〈아무르〉는 사랑을 감정의 문제로 다루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사랑은 선택이며 책임이고, 때로는 잔인한 결단이다. 노년의 부부 조르주와 안느는 더 이상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들의 삶에는 오직 현재의 지속과 끝을 향한 시간만이 남아 있다. 이 영화는 묻는다. 사랑이란 끝까지 함께 견디는 것인가, 아니면 더 이상 견디지 않아도 되게 해주는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을 관.. 2025. 12. 30.
리뷰]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상실, 최책감, 삶의 지속)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어떤 슬픔은 극복되지 않고 삶의 일부로 남는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상실을 다룬 영화이지만,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극복 서사’를 의도적으로 거부한다. 이 작품에는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위로도, 사랑이 상처를 치유해 준다는 낭만도 없다. 대신 이 영화는 어떤 상실은 인간의 삶 속에 고착되어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그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삶이 될 수 있음을 조용히 보여준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비극의 순간보다 비극 이후의 시간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사건은 과거에 있지만, 고통은 현재형으로 지속된다. 이 영화가 묻는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모든 상처를 극복해야만 살아갈 자격이 있는가. 그리고 이 작품은 그 질문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 상실리.. 2025. 12. 30.
리뷰] 플로리다 프로젝트 (아이, 어른, 현실) 플로리다 프로젝트, 가장 밝은 색으로 그려진 가장 잔혹한 현실에 대하여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미국 플로리다의 햇살 가득한 풍경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 영화가 담아내는 이야기는 결코 밝지 않다. 디즈니월드 근처의 형형색색 모텔, 아이들의 웃음소리, 여름의 자유로움은 이 작품의 표면에 불과하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아이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빈곤과 불안정한 삶이 어떻게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는지를 조용히 드러낸다. 이 영화는 가난을 설명하지 않고, 연설하지 않으며,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대신 가난 속에서도 웃고, 놀고, 상상하는 아이의 하루를 따라간다. 그 과정에서 관객은 점점 깨닫게 된다. 이 밝음이야말로 현실을 견디기 위한 가장 절실한 방어라는 사실을. 그래서 〈플로리다.. 2025. 12. 30.
리뷰] 원스 (만남, 창작, 이별) 원스, 사랑이 끝나도 음악은 남고 음악이 끝나도 삶은 계속된다 원스는 거리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만남을 통해 사랑과 음악, 그리고 현실적인 이별의 풍경을 조용히 그려낸다. 이 영화에는 극적인 고백도, 운명적인 키스도, 모든 것을 바꾸는 사건도 없다. 대신 기타 한 대, 낡은 피아노, 그리고 서로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건네는 두 사람이 있을 뿐이다. 〈원스〉는 사랑을 완성의 이야기로 다루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사랑은 잠시 스쳐 가는 감정이며, 서로의 삶을 완성해 주기보다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만드는 계기에 가깝다. 음악은 이 관계를 이어주는 언어이자, 동시에 이별을 가능하게 만드는 매개다. 그래서 〈원스〉는 달콤하기보다 현실적이고, 낭만적이기보다 정직하다. 이 영화는 묻는다. 사랑이 반드시 함께하는 미.. 2025.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