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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폭력, 추적, 침묵)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해하려는 인간이 끝내 도달하지 못한 세계의 얼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범죄와 추격을 다루는 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실상은 폭력이 더 이상 설명되지 않는 세계에 대한 철저한 관찰에 가깝다. 이 영화는 악을 고발하지도, 정의의 승리를 약속하지도 않는다. 대신 의미가 작동하지 않는 시대의 공기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살인은 이유를 요구하지 않고, 죽음은 교훈을 남기지 않으며, 살아남는 자는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묻는다. 우리가 이해하려고 애써온 세계는 과연 지금도 같은 규칙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아니면 그 규칙은 이미 무너졌고, 우리는 그 잔해 위에서 여전히 설명을 찾고 있는 것인가. 이 영화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대신 끝내 이해.. 2026. 1. 1.
리뷰] 시카고 7 (기소, 언어, 기억) 시카고 7, 법정에 세워진 것은 피고가 아니라 민주주의 그 자체였다 시카고 7은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와 그 이후의 재판을 다룬 실화 기반 영화이지만, 이 작품의 진짜 주제는 특정 사건의 진위 여부가 아니다. 이 영화가 끝까지 파고드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이 어떻게 정치의 도구가 되는가, 그리고 정의가 형식으로만 남았을 때 개인은 어떤 위치로 밀려나는 가다. 〈시카고 7〉에서 법정은 중립적인 판단의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결론이 정해진 이야기 위에 형식을 덧씌우는 공간이며, 질서를 위협하는 목소리를 통제하기 위한 무대다. 이 영화는 묻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은 정말로 시민을 보호하는 장치인가, 아니면 권력이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에 불과한가. 그리고 이 질문을 통해, 말할 자.. 2025. 12. 31.
리뷰]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 (순환, 존엄, 침묵)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 실패가 끝나지 않는 세계에서 예술은 어떻게 남는가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는 성공하지 못한 음악가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실패가 일상이 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존엄을 다루는 영화다. 이 작품은 예술을 꿈꾸는 사람의 성장이나 도약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끝없이 반복되는 좌절과 무력함, 그리고 그 속에서도 포기되지 않는 태도를 응시한다. 르윈 데이비스는 재능이 없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노래를 잘하고, 음악을 이해하며, 진지하게 예술을 대한다. 그러나 그 모든 조건은 그를 구원하지 않는다.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는 이 잔인한 현실을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묻는다. 성공하지 못한 예술가는 실패자인가. 아니면 성공이라는 기준 자체가 잘못 설정된 것인.. 2025. 12. 31.
리뷰] 룸 (세계, 탈출, 회복) 룸, 세계를 잃은 뒤에야 비로소 세계를 배우게 되는 사람들에 대하여 룸은 감금과 탈출이라는 극단적인 사건을 다루지만, 이 영화가 진정으로 응시하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많은 영화들이 탈출을 서사의 정점으로 삼지만, 〈룸〉은 탈출을 하나의 통과 지점으로 취급한다. 이 영화에서 진짜 어려운 시간은 자유를 얻은 이후에 시작된다. 조이와 잭은 세상으로 돌아오지만, 세상은 그들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들은 다시 적응해야 하고, 다시 배워야 하며, 다시 관계를 맺어야 한다. 〈룸〉은 질문한다. 인간은 과연 자유를 어떻게 감당하는 존재인가. 그리고 아이와 어른은 같은 현실을 얼마나 다르게 받아들이는가. 이 영화는 생존의 이야기라기보다, 기억과 관계가 어떻게 인간을 다.. 2025. 12. 31.
리뷰] 더 헌트 (의심, 사냥, 잔존) 더 헌트, 진실보다 빨리 움직이는 확신이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가 더 헌트는 억울한 누명을 쓴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단순한 틀로는 결코 설명될 수 없는 작품이다. 이 영화의 핵심은 사건의 진실 여부가 아니라, 진실이 아직 밝혀지기도 전에 공동체가 어떻게 ‘확신’에 도달하는가에 있다. 〈더 헌트〉는 범인을 찾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은 범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추적한다. 아이의 말 한마디, 어른의 불안, 그리고 그 불안을 확대 해석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어떻게 한 인간을 고립시키고 파괴하는지를 차갑게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악의가 아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선의로 포장된 확신이며, “아이를 위해서라면”이라는 문장이 가진 폭력성이다. 〈더 헌트〉는 묻는다. 우리가 정의라고 믿는 것은.. 2025. 12. 31.
리뷰] 시카리오 (질서, 폭력, 무력) 시카리오, 정의가 작동하지 않는 세계에서 인간은 어떻게 도구가 되는가 시카리오는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을 다룬 범죄 스릴러가 아니다. 이 영화는 정의가 실패한 세계에서 국가와 개인이 어떤 방식으로 폭력에 편입되는지를 해부하는 정치적·윤리적 보고서에 가깝다. 〈시카리오〉에는 영웅이 없다. 선과 악의 명확한 구분도 존재하지 않는다. 법은 명분으로만 남아 있고, 윤리는 작전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취급된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누가 옳은가”를 묻지 않는다. 대신 “누가 살아남는가”, “누가 필요해지는가”를 묻는다. 정의를 믿는 개인은 이 구조에서 어떤 역할도 맡지 못한다. 혹은 애초에 이 구조는 그런 개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시카리오〉는 그 냉혹한 사실을 끝까지 숨기지 않는다. 질서영화는 FBI 요원 케이트.. 2025.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