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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러스트 앤 본 (몸, 폭력, 회복) 러스트 앤 본, 사랑은 왜 가장 부서진 몸에서 시작되는가 러스트 앤 본은 상처 입은 두 인간이 서로를 통해 구원받는 감동적인 멜로드라마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결코 치유를 쉽게 말하지 않는다. 〈러스트 앤 본〉에서 사랑은 회복의 약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자신의 상처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폭력적인 계기다. 이 작품은 묻는다. 인간은 언제 비로소 자신의 몸을 인식하는가. 완전할 때인가, 아니면 완전히 부서졌을 때인가. 주인공 알리와 스테파니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삶에서 밀려난 존재들이며, 이 영화는 그들이 서로를 통해 나아지는 과정보다, 서로를 통해 얼마나 더 적나라하게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러스트 앤 본〉은 사랑을 위로로 포장하지 않는다. 대신 사랑이.. 2026. 1. 4.
리뷰] 아이 엠 러브 (역할, 각성, 배신) 아이 엠 러브, 사랑은 왜 한 인간의 삶 전체를 무너뜨리는 사건이 되는가 아이 엠 러브는 불륜이나 로맨스를 다루는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한 인간의 삶을 지탱해 온 구조 전체를 어떻게 붕괴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사랑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오랫동안 억압되고 삭제되어 온 감각이 더 이상 침묵하지 못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필연적인 사건이다. 주인공 엠마는 갑자기 사랑에 빠진 여인이 아니라, 타인의 규칙과 계급의 질서 속에서 자신을 유예한 채 살아온 인물이다. 그녀의 삶은 안정적이고 우아하며 결핍이 없어 보이지만, 바로 그 완벽함이 그녀를 가장 깊은 부재 상태로 몰아넣는다. 〈아이 엠 러브〉는 묻는다. 인간은 언제까지 역할로 살아갈 수 있는가. 감각을 삭.. 2026. 1. 4.
리뷰] 클로저 (언어, 욕망, 진실) 클로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가장 잔인하게 시험하는 사람들 클로저는 네 명의 인물이 끊임없이 서로를 바꾸어 사랑하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랑이 인간을 얼마나 잔혹한 질문 앞에 세우는지 보여주는 구조 실험에 가깝다. 이 영화에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계약처럼 취급되며, 진실은 신뢰의 증거가 아니라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한 최종 무기가 된다. 인물들은 서로에게 가까워지기를 원하지만, 그 가까움이 만들어내는 불안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말하고, 캐묻고, 확인하며, 결국 가장 아픈 방식으로 관계를 파괴한다. 〈클로저〉는 사랑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을 너무 정확히 묘사하기 때문에, 그 폭력성을 숨기지 않는다. 이 영화는 묻는다. 우리는 정말로 상대를 알고 싶은가, 아니면 상대를 .. 2026. 1. 3.
리뷰] 토니 타키타니 (고독, 소유, 부재) 토니 타키타니, 사랑이 없었던 삶은 어떻게 고독을 소유하게 되는가 토니 타키타니는 이야기보다 침묵이 먼저 다가오는 영화다. 이 작품은 극적인 사건이나 갈등으로 관객을 끌어들이지 않는다. 대신 고독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한 인간의 삶 전체를 잠식해 가는지를 조용히, 그러나 끝까지 따라간다. 〈토니 타키타니〉에서 고독은 일시적인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주어진 환경이며, 선택이 아니라 조건이다. 토니는 외롭기 때문에 고독해진 것이 아니라, 고독한 방식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살아온 인물이다. 이 영화는 묻는다.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인간은 무엇으로 자신을 채우는가. 관계 대신 소유를 택한 삶은 과연 결핍을 메울 수 있는가. 그리고 사랑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기억인가, 아니면.. 2026. 1. 2.
리뷰]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도피, 상실, 시간)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사랑이 끝난 뒤에도 감정은 어디로도 가지 못한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이별 이후의 사랑을 다룬 영화다. 그러나 이 작품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이 끝난 뒤에도 감정이 얼마나 오래 제자리에 머무르는지를 집요하게 관찰한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에서 인물들은 떠나지만, 감정은 떠나지 않는다. 이동은 계속되지만, 정착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영화는 로드무비의 형식을 빌리지만, 그 여정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감정의 궤적에 가깝다. 웡 카와이는 이 작품에서 사랑의 격렬함보다, 사랑이 남긴 잔여물에 집중한다. 남아 있는 말, 끝내 전하지 못한 감정,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그리움.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2026. 1. 2.
리뷰] 문라이즈 킹덤 (도망, 사랑, 어른) 문라이즈 킹덤, 어른이 되기 전에 이미 끝나버린 세계를 기억하는 가장 잔인한 동화 문라이즈 킹덤은 아이들이 집을 나와 숲으로 들어가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른들이 이미 실패한 세계의 구조를 해체하는 영화다. 이 작품은 성장담의 외피를 쓰고 있으나, 성장이라는 단어를 거의 믿지 않는다. 샘과 수지는 어른이 되기 위해 도망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어른보다 더 정확하게 세계의 모순을 감지했기 때문에 떠난다. 반면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호하고 통제하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삶을 전혀 책임지지 못한다. 〈문라이즈 킹덤〉은 묻는다. 우리는 언제부터 아이의 결단을 철없다고 부르기 시작했는가. 그리고 어른의 체념을 성숙이라고 착각하게 되었는가. 이 영화는 그 질문을 동화적인 색감과 완벽하게 계산.. 2026.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