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282

리뷰] 멜랑콜리아 (우울, 불안, 종말) 멜랑콜리아, 세상이 끝나는 순간보다 훨씬 이전에 이미 무너져 있던 마음의 풍경 멜랑콜리아는 행성 충돌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이 영화가 끝까지 파고드는 대상은 재난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이다. 〈멜랑콜리아〉에서 종말은 공포의 클라이맥스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예정된 결론이며, 이 영화는 그 결론을 향해 사람들이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지를 관찰한다. 누군가는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속에서 세상이 끝나 있었고, 누군가는 끝이 다가오기 전까지 끝을 믿지 않으려 애쓴다. 이 작품은 우울과 불안을 병리로만 취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세계를 인식하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제시한다. 그래서 〈멜랑콜리아〉는 재난 영화가 아니라 감정의 구조를 해부하는 영화이며, 종말을 통해 삶의 태도를 묻는 작품이다. 우울.. 2025. 12. 29.
리뷰] 더 로드 (붕괴, 부성, 불씨) 더 로드, 세계가 끝난 뒤에도 인간이 끝나지 않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했던 것들 더 로드는 포스트아포칼립스 영화라는 장르적 외형을 갖고 있지만, 이 작품이 진짜로 응시하는 대상은 재난 이후의 풍경이 아니라 인간의 윤리다. 〈더 로드〉는 왜 세계가 멸망했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추적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이 영화가 끝까지 붙잡는 질문은 단 하나다. 모든 규칙과 제도가 무너진 뒤에도, 인간이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가. 잿빛 하늘과 폐허가 된 도로 위를 걷는 아버지와 아들의 여정은 생존을 위한 이동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기 위한 마지막 방어선에 가깝다. 이 영화는 희망을 크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 희망이 얼마나 작고 연약한 상태로 유지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로드〉는.. 2025. 12. 29.
리뷰]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 (거짓말, 청춘, 사랑)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 진심을 말할 수 없게 된 어른과 너무 쉽게 믿어버린 청춘의 간극에 대하여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하는 음악과 사랑을 중심에 둔 청춘 로맨스로 소개되지만, 실제로 이 영화가 끝까지 파고드는 주제는 ‘거짓말’이라는 감정의 기술이다. 이 작품에서 거짓말은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처를 피하기 위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혹은 살아남기 위해 선택된 방어의 언어에 가깝다. 음악 산업이라는 냉정한 세계 속에서 재능은 상품이 되고, 감정은 관리 대상이 된다. 그 안에서 청춘은 너무 빨리 성장해야 하고, 사랑은 언제나 불안정한 기반 위에 놓인다.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는 묻는다. 진실을 말하지 못한 사랑은 과연 거짓일까, 아니면 가장 불완전하지만 인간적인.. 2025. 12. 29.
리뷰] 디스트릭트 9 (격리, 변형, 인간성) 디스트릭트 9, 타자를 관리한다는 명목 아래 인간 사회는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가 디스트릭트 9는 외계 생명체가 등장하는 SF 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핵심은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이다. 이 작품은 외계인의 침략이나 인류의 멸망을 다루지 않는다. 대신,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다른 존재’를 인간 사회가 어떻게 규정하고, 분류하고, 통제하며, 결국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지를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디스트릭트 9〉에서 외계인은 괴물이 아니라 난민에 가깝고, 인간은 피해자가 아니라 관리자에 가깝다. 이 영화는 묻는다. 우리가 권력의 위치에 서 있을 때, 차별은 얼마나 쉽게 제도화되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성은 어떤 방식으로 마모되는가. 그래서 이 작품은 불편하고 거칠지만, 동시에 현실을.. 2025. 12. 29.
리뷰] 이퀼리브리엄 (질서, 각성, 자유) 이퀼리브리엄, 감정을 제거한 평화가 인간에게 남기는 것은 구원인가 공허인가 이퀼리브리엄는 디스토피아 영화의 전형적인 설정을 따르는 듯 보이지만, 그 질문은 매우 근본적이다. 전쟁과 폭력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감정을 통제한 사회는 과연 이상적인가. 〈이퀼리브리엄〉은 고통과 분노, 증오를 제거하면 평화가 유지될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하지만, 그 가정이 얼마나 인간을 단순화하고 있는지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이 영화에서 감정은 혼란의 원인이자 동시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이다. 그래서 〈이퀼리브리엄〉은 총격과 액션으로 기억되기보다는, 감정이 사라진 세계가 얼마나 비인간적인 질서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는 철학적 우화에 가깝다. 이 작품이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효율과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감정.. 2025. 12. 29.
리뷰] 컨택트 (언어, 시간, 선택) 컨택트, 이해란 외계와의 조우가 아니라 이미 알게 된 삶을 끝까지 살아내겠다는 결심이다 컨택트는 외계 문명과의 첫 접촉이라는 거대한 설정을 내세우지만, 실제로 이 영화가 끝까지 붙잡는 질문은 훨씬 조용하고 개인적이다. 〈컨택트〉는 침략과 전쟁, 기술 경쟁을 다루지 않는다. 대신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언어가 사고를 규정하는 구조, 그리고 시간이 삶의 선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집요하게 탐구한다. 이 작품은 외계인을 통해 인간을 바라보는 영화이며, 미래를 통해 현재의 삶을 다시 해석하게 만드는 영화다. 그래서 〈컨택트〉는 SF 장르의 외형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랑과 상실, 선택과 책임에 대한 철학적 성찰에 가깝다. 이 영화가 남기는 여운은 놀라움이 아니라 질문이다. 만약 끝을 알고 있다면.. 2025. 1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