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283

리뷰] 소울 (꿈, 삶의 감각, 삶의 이유) 소울,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다 삶을 통째로 지나쳐버린 우리에게 건네는 조용한 진실 소울은 평생을 재즈 음악가의 꿈 하나에 매달려 살아온 남자가 죽음의 경계에서 비로소 ‘살아 있음’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이 영화는 흔히 말하는 성공 서사, 사명 서사를 정면으로 의심한다. “너는 특별한 이유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문장을 축복처럼 보이게 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현재의 삶에서 밀어내 왔는지를 조용히 드러낸다. 〈소울〉은 위대한 꿈을 비웃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그 꿈을 좇느라 우리는 오늘을 얼마나 자주 놓쳐왔는지를.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이 꼭 어떤 목적을 증명해야만 가능한 일인지, 끝내 관객 스스로에게 질문을 돌려준다. 꿈이라는 이름의 미래조 가드너의 삶은 하.. 2025. 12. 24.
리뷰] 토이 스토리 (역할, 공포, 함께) 토이 스토리, 사랑받던 자리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가르친 영화 토이 스토리는 장난감이 살아 움직인다는 기발한 설정으로 시작하지만, 그 안에는 매우 냉정하고 성숙한 질문이 숨겨져 있다. 이 영화는 우정이나 모험보다 먼저 ‘역할’을 이야기한다. 사랑받는 존재가 된다는 것의 조건, 그 자리가 얼마나 쉽게 대체될 수 있는지, 그리고 대체된 이후에도 삶은 계속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토이 스토리〉는 아이의 성장담이 아니라, 아이가 성장하면서 밀려나는 존재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이 영화는 밝고 유쾌한 외피와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잔인하게 마음에 남는다. 사랑받는다는 역할〈토이 스토리〉의 세계에서 장난감의 존재 이유는 명확하다. 아이에게 선택받고, 놀아지고, 필요해지는 것. 이 세계에는 ‘존.. 2025. 12. 24.
리뷰] 박하사탕 ( 삶, 폭력, 기억 ) 박하사탕, 한 인간의 삶을 거꾸로 되감아 끝내 도착하는 절규의 시작점 박하사탕은 한 남자의 죽음에서 출발해 그의 삶을 거꾸로 되짚으며, 개인의 붕괴가 어떻게 시대의 폭력과 맞물려 형성되었는지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 영호를 변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가 왜 그렇게 망가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시간의 역순 속에서 하나씩 드러낸다. 〈박하사탕〉은 회복의 서사가 아니다. 사과의 영화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버렸는가”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강제로 떠넘기는 영화다. 개인의 비극은 결코 개인의 책임으로만 끝나지 않으며, 기억되지 않은 역사는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인간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이 작품은 끝까지 숨기지 않는다. 죽음에서 시작되는 삶〈박하사탕〉은 죽음으로 시작한다. 철.. 2025. 12. 24.
리뷰] 마더 (사랑, 의심, 집착, 진실, 부정) 마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죄를 지우고 세상을 침묵시키는 한 인간의 얼굴 마더는 지적 장애가 있는 아들이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몰리자, 그를 지키기 위해 모든 윤리와 법, 인간적 기준을 하나씩 무너뜨리는 어머니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 모성을 숭고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모성이 어떻게 집착이 되고, 폭력이 되며, 진실마저 제거하는 힘으로 변모하는지를 끝까지 추적한다. 〈마더〉는 범죄의 진실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랑이 절대선이라는 믿음은 과연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믿음이 다른 인간의 삶을 지워버릴 때, 우리는 그것을 여전히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가. 이 영화는 끝내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관객이 외면할 수 없는 얼굴을 남긴다. 사랑〈마더〉의 시작은 놀라울 만큼 .. 2025. 12. 24.
리뷰] 아이 캔 스피크 (말, 침묵, 증언, 존엄) 아이 캔 스피크, 웃음으로 시작해 끝내 침묵의 역사를 깨뜨리는 한 인간의 목소리 아이 캔 스피크는 매일같이 민원을 넣는 괴짜 할머니와 원칙주의 공무원의 관계를 코미디처럼 시작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무거운 침묵으로 나아가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비극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웃음을 통해 관객의 방어를 풀고, 그 웃음이 사라진 자리에 오래도록 말해지지 않았던 기억과 존엄의 문제를 놓는다. 〈아이 캔 스피크〉는 피해를 설명하지도, 대신 말해주지도 않는다. 오직 한 사람이 자기 언어로 자기 삶을 말할 권리를 되찾는 과정을 끝까지 지켜본다. 이 영화는 묻는다. 우리는 과연 그동안 듣지 못했던 것인지, 아니면 듣지 않으려 했던 것인지를. 말〈아이 캔 스피크〉의.. 2025. 12. 24.
리뷰] 밀양 (이동, 상실, 신앙) 밀양, 신에게 매달린 사람이 끝내 인간의 얼굴을 견뎌야 했던 이야기 밀양은 한 여성이 연속적인 상실을 겪으며 신앙과 용서, 인간의 존엄에 대해 끝까지 흔들리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 비극을 극복하는 서사를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신앙이 인간에게 어떤 방식으로 위로가 되기도 하고, 동시에 얼마나 잔인한 폭력이 될 수 있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밀양〉은 ‘용서’라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구원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는 고통 앞에서 정말로 신을 찾는 것인지, 아니면 고통을 견딜 언어를 찾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 언어가 무너졌을 때, 인간에게 무엇이 남는지를 끝까지 외면하지 않는다. 이동〈밀양〉은 한 여자의 이동으로 시작된.. 2025. 12. 23.